<체사레 베카리아>

이탈리아의 형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C. B. Beccaria)가 이렇게 말했지요.
"역사가 없는 나라의 국민은 행복하다"고.
역사는 언제나 그것을 돌아보는 이들에게 쓰라린 반성과 함께 교훈을 주지요. 베카리아는 되돌아볼 역사가 없는 이들에겐 어리석은 과오도, 어두운 과거도, 그로인한 파국도 존재하지 않기에 그만큼 행복할 수 있다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자신들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역사도 시작되었기에 실제로 '역사가 없는 나라'가 존재하는 일은 없겠지요. 그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억지로 그들의 행적을 잊어버리려 노력하지 않는 한 말이죠.


<기록말살형을 당한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사실,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애써 그 시대의 일을 잊어버리려 노력한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에는 기록말살형(Damnatio Memoriae)이라는 게 있어서, 아주 끔찍할만큼 실정을 저지른 황제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리는 일이 벌어지곤 했어요. 그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 공문서는 불태워지고, 동전에 새겨진 얼굴은 깎아 없애버리고, 애써 만든 조각상들은 부숴버리는 - 후세의 사람들이 그에 대한 기록을 찾으려 해도 다시는 찾지 못할 정도로 '역사'를 삭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거죠.


<조선의 역사가 말소되었다는 전제로 시작되는 영화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우리나라에서도 '역사'를 말소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적이 있었죠. 바로 일제 강점기 시대입니다. 소위 '민족 말살 통치'가 시작된 1931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일제는 '내선일체', 즉 조선과 일본을 한 나라로 규정하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모조리 부정하는 정책을 시행하지요. 한국말은 금지되고, 한국 이름을 억지로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살정책이란 게 굉장히 지독하게 이루어진 탓에 국내외 독립운동은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암암리에 이루어지던 조선 역사 및 우리말 교육도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합니다. 그리하여 1945년 광복이 되었을 때, 20대 이상의 어른들은 모두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는데, 민족 말살 통치 기간에 태어난 어린아이들은 일본과 우리나라를 한 나라로 여기고 왜 일본이 패망했는데 만세를 부르는지 어리둥절해 했다고 하네요. 위에 예시로 든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해방이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조선이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남았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영화인데요. 지독했던 민족 말살 통치에 관한 기록을 보면 정말 그럴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섬찟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조선의 역사'를 잃어버린 우리 민족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저 새(참새)는 해로운 새다. - 만화 '창천항로' 중>

우리와 이웃한 중국에도 소위 '잊혀진 역사'가 존재합니다. 바로 1960년 전후에 일어난 '대약진 운동' 시기죠. 당시 소련이 미국의 경제력을 능가하겠다는 선언을 하자 이에 질 수 없었던 중국 공산당의 수장 마오쩌둥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이 '대약진 운동'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아주 참담한 실패로 끝나게 되지요.

마오는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운동을 추진했다. 소련과의 동맹 관계에서 긴장이 느껴지기 시작한 때, 마오는 농촌에서 공업을 발전시키고 관개공사 같은 대규모 작업을 계획적으로 실시하여 각 지방을 일종의 자급자족 지역으로 만들고자 했다...

... 마오가 참새를 보고 해로운 새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전국에 참새잡이 광풍이 불기도 했다. 평균 5천 가구를 모아놓은 거대 집단 '인민공사'는 더욱더 노동집약적이고 합리적인 생산 조직을 자처했다...

... 사실상 대약진 운동은 금세 참담한 실패로 드러났다. 공장에서나 농업협동조합에서나 간부들은 자꾸만 늘어나는 생산 할당량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중앙 정부는 제대로 경제학적 계산도 하지 않고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목표를 잡았던 것이다. 새로운 결정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즉시 제거당했다. 당시 공산당 간부의 10퍼센트가 축출당했고, 농촌에서는 당 지부 간부의 절반 이상이 교체되었다. 신장 같은 소수민족 지역은 특히 심한 탄압을 받았고 이미 넘쳐나는 노동교양소들도 수만 명을 더 받아야만 했다.

... 전문가들은 1959~1962년 사이에 중국에서 1천4백만 명에서 3천만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정치적 선택의 유토피아는 용납되지 않았다. 1962년 중국공산당 제8기 9중전회 때 류사오치가 주도한 노동분과 회의에서 대약진운동의 실패는 70퍼센트가 인재(人災), 30퍼센트는 천재(天災)라고 결론을 내렸다. 1979년에 당은 대약진운동의 참사를 인정했지만 상당 부분 자연재해, 특히 가뭄을 실패의 원인으로 돌렸다. 당시에 중국이 가뭄에 시달렸떤 것은 사실이지만 잘못된 관개사업 계획도 한몫을 했다. 오늘날까지도 중국인들은 대약진운동의 역사를 이런 식으로만 알고 있다. 지역 간 교류가 거의 없고 공산당의 선전이 유일한 정보통이었으며 어떤 통계 자료도 발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을 읽다> 중


<앤디 워홀의 마오쩌둥>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실패 이후에도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다시한번 중국을 혼란으로 몰아갑니다.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에서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되고, 사회기반은 무너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죠. 마오는 그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7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중국인들은 그를 지금의 중화민국이 있게 한 신화적인 인물로 기억합니다. 그가 저지른 실정들이 모두 왜곡되고 삭제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죠.


<지금도 보존되어 있는 마오쩌둥의 시신>
 

중국은 참으로 신기한 나라입니다. 경제 규모 세계 2위. 외환보유고 세계 1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세계 2위의 대국이면서 1인당 GDP는 90위에 그치는 개발도상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4번째로 많은 나라이면서도 하루 생활비 1달러 미만의 절대 빈곤층이 2억명이나 있는 나라. 버젓하게 공산당이 존재하면서도 자본의 힘이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 소위 '대국 시리즈'라 불리는 유머 게시물을 돌려보며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기엔 중국이라는 나라는 너무도 크게, 그리고 너무도 가까이 우리의 곁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중국, 그들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중국. 이제 다시 한번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돌아볼 때가 아닐까요?

중국을읽다1980-2010세계와대륙을뒤흔든핵심사건170장면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카롤린 퓌엘 (푸른숲,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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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중국을 읽다> 책표지에 웃는 그림을 보며 따라 웃게 되는 나를 발견 ^^ 
모두다 그렇지 않으신지?
그래서 웨민쥔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 했습니다.



중국 현대미술 작가 <Yue MInjun 웨민쥔,岳敏君>
1962 헤이룽장성(黑龙江省) 다칭(大庆) 출생
1985 허베이 사범대학 회화과 졸업
2005 <조각 설치 세계 박람회>, 리도, 베니스, 이태리
2004 <노 유턴: 중국 현대 미술>, 관도 미술관, 타이완, 중국
2003 CP 열린 비엔날레. 인도네시아 국제 갤러리,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2002 <중국 현대 미술전: 붉은 땅의 나라>, 광주 미술관, 한국
2002 <우리의 친구들>, 바우하우스 미술관, 바이마르, 독일
2001 <5명의 중국 아방가르드 작가>,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한국
1999 48회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이탈리아

웨민쥔은 중국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야기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자신의 얼굴로 표현한다고...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리며 웃고 있는 그의 작품속 인물들은 유머러스하기 보다는 비판적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네요.
 

2007년 10월 12일 런던 소더비에서 590만불에 낙찰된 웨민쥔(45세)의 '처형'.


 파리 아트큐리알 박물관 학예실의 중국미술 비평가인 Pia Copper 는 한 잡지 인터뷰에서
"어렵고 슬픈 현실 앞에서 명랑하게 웃는 그림 속 남자의 모습은 스스로를 조롱하는 내적슬픔이다." 
라고 했답니다.

설명을 듣고 나서 그림을 찬찬히 보다 보니 그의 그림에서 슬픔이 느껴지네요.


1 ‘Dog-spring culture’(2008). 캔버스에 유채. 300*400㎝
2 쑹좡 아틀리에 내부 모습.
3 쑹좡 아틀리에 마당에 설치된 조각상.
4 ‘Isolated Island’(2010), 캔버스에 유채, 300*300㎝

 


 

 

 

 

 

 

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조선일보 - "덩샤오핑이 이끈 중국 현대사 30년"

1980년 1월 베이징 자금성 뒷거리에 자리 잡은 덩샤오핑 사저에 검은색 승용차들이 매일같이 들락거렸다. 저택 안 집무실에선 중국의 진로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 일흔다섯 덩샤오핑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어가기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 달 중국공산당 11기 5중전회에서 덩은 보수파의 견제를 물리치고 측근 자오쯔양과 후야오방을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해 8월 26일 광둥성 선전이 첫 번째 공식 경제특구로 선포됐다. 한적한 어촌이었던 선전은 지금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기사 더보기

중앙일보

리베라시옹 등의 기자로 활동하며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인 저자가 1980년 이후 30년간 중국의 핵심 사건을 연대순으로 선별해 중국의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중국의 현재를 만든 여러 사건의 이면에서 벌어진 최고 수뇌부의 상황과 일반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묘사했다. 기사 더보기

동아일보 -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큰 나라의 이렇게 큰 변화는 없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큰 나라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토록 대대적인 변화를 겪은 적은 없다.’ 프랑스 언론인인 저자가 개혁 개방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1980∼2010년의 중국을 기록한 이유다. 가난하고 폐쇄적이었던 이 나라는 30여 년 만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고 국제무대에서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기간에 저자는 주프랑스 대사관 언론보도담당관과 프랑스 여러 언론의 특파원 자격으로 중국의 성장을 지켜봤다. 기사 더보기

헤럴드경제 - "중국과 美ㆍ서구의 소통부재가 낳을 최악의 시나리오는?"

불과 30년 만에 글로벌 최강자가 된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미국과 서구는 중국의 경제성장은 인정하면서도 정치개혁면에선 여전히 민주주의가 안 된 나라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거기엔 두려움과 오해가 얽혀 있다. 중국 의존적이 돼가고 있는 아세안권, 동아시아도 마찬가지다.이는 뒤집어보면 중국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과거의 영광을 어느 정도 되찾기는 했으나 이를 유지할 수 있느냐다. 이는 중국식 모델이라 불리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접목의 성패 여부로 직결된다. 기사 더보기

한국경제 - "정책 착오 줄인 지도부 카리스마…중국식 시장경제가 大國 일군다"

중국 남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에 부딪혔다. 이때 중국 정부는 외국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예측해 임금을 조금씩 올려주거나 노동 조건을 개선하도록 조심스럽게 압박했다. 광저우에서 사업을 하는 한 프랑스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방정부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시끄러워지지 않게 일을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노사분규가 일어나면 지방정부는 국내 기업, 외국 기업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권력은 결국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알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적극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기사 더보기

서울경제신문 - "中 성장 키워드는 중화 명성 회복·권력 안정"

경제 규모 세계 2위. 외환보유고 세계 1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세계 2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력은 경이롭고 압도적이다. 거대한 국토와 인구를 가진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지난 30년간 지대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경제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성장했고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포스트 덩샤오핑 시대, 홍콩 반환, 쓰촨성 대지진 등 정치·사회적으로도 격변의 시기를 보냈다. 정통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중국식 사회주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시스템이 거둔 성적표라는 점에서 중국의 현재는 세계적으로도 분석거리다. 하지만 중국은 다른 한편에서는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각종 갈등도 안고 있는 신흥국가이기도 하다. 기사 더보기

연합뉴스 - "중국이 깨어난 이상 세계질서는 뒤바뀔 것"

(1989년) 6월3일 수천 명의 군인들이 베이징 (순환도로) 얼환루까지 접근했다. 그다음에 그들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군복 차림으로 시내 중심까지 행군했다. (중략) 해가 저물자 베이징 서쪽에서 군용 트럭들이 다시 나타났다. 푸싱먼 사거리에서부터 경기관총이 등장했다. 깜짝 놀라 분노한 군중을 헤치고 군대는 베이징 중심부 톈안먼 광장으로 전진했다." "1994년에 프랑스 대사관이 위치한 동네에 베이징 최초의 서구식 바가 문을 열었다. 비슷한 바들이 금세 늘어났다. 1995년부터 술집과 식당 거리가 베이징 싼리툰에 조성됐다. 이 거리는 베이징의 밤 문화를 바꿔놓았다." 기사 더보기

대전일보 - "세계 호령하는 中 만든 주역들의 궤적을 따라서"  
 
경제규모 세계 2위, 외환보유고 세계 1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세계 2위. 경제를 넘어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력은 경이롭고 압도적이다. 대륙을 뒤흔들고 다시 세계를 호령하게 된 중국이 어떻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중국을 읽다:세계와 대륙을 뒤흔든 핵심사건 170장면'은 개혁·개방 이후 눈부신 성장과 함께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중국의 고속성장기 1980년부터 2010년까지의 핵심사건들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인 카롤린 퓌엘은 프랑스 언론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알베르 롱드로 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로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에 '르푸앵', '리베라시옹'의 중국사무소를 만들고, 이후 30년간 대륙에 체류하면서 개혁의 여정을 고스란히 목도한 중국 전문가다. 기사 더보기

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유럽 여행을 하다 현지 TV를 볼 기회가 있었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한창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를 말로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아나운서 옆에 낯익은 얼굴이 떠올랐다. 뽀글뽀글한 파마 머리에 육중한 몸, 느릿느릿 거만하게 움직이는 걸음걸이. 북한의 '장군님' 김정일이었다.


<장군님의 잡스 따라하기>

타국에 나와 미디어에서 본 최초의 '한국인'이 그가 될 줄이야. 무심하게 북한 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찝찝한 표정을 하고 식사를 마쳤지만, 이 곳에서는 우리나라 지방 뉴스처럼 일부 방송 시간을 할애해 매일 '북한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음 날에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같이 뉴스에 등장하는 그의 얼굴을 보아야만 했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곳 사람들이 묻는 '앞으로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될 것 같아?'라는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북한과 남한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서양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그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12월 20일자 북한 로동신문 1면>



그리고 그런 그가, 죽었다. 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18년간 북한을 지배해 온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김정일의 사망 소식이 공식 발표된 이후, 외국인 친구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처음 만났을 때 '북한 사람이야? 남한 사람이야?'라며 발랄하게 묻던 그들이 '북한의 지도자가 죽었잖아...'라며 조심스레 운을 떼며 불안함을 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폐쇄적인 독재자가 일으킨 세계대전으로 삶의 터전이 참혹하게 부서졌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유럽인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우리 못지않았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람 -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

김정일의 뒤를 이어 '대장님'의 칭호를 받은 그의 셋째 아들 김정은이 후계에 올랐다. 세계 최연소 국가 원수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권좌에 오른 그였지만, 북한의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제 - 식량난, 지지 기반 미약, 너무 어린 나이 등이 그의 불안요소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왕조 국가가 사라진 현대사에 있어서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은 유래없는 일이다. 싱가포르와 대만이 2대 세습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긴 했지만 북한 특유의 신격화와 무조건적인 세습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세습이 이루어진 나라와 그 지도자들>

흔히들 공산주의를 '20세기 인류가 감행한 최대의 실험이자 최악의 실패작'이라 부른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대비되는 민주주의를 지금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사회 구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아직 세계의 '대세'라 할 수 없다. '공화국'이라는 탈을 쓴 '왕조 국가'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공화국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라의 일을 꾸려가는 나라'라는 의미이지, 대중에 의한 공정한 투표로 지도자와 권력이 생성되는 민주주의의 의미와는 다르다). 멀리 쿠바와 싱가포르를 들 수 있고, 가까이 북한과 중국이 있다.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역시 이루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중국

중국은 이미 여러 번 죽었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부활했다.

<문명 이야기> 중

서양 위주의 시각이긴 하지만, 중국은 싱가포르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위기가 일어날 진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도 사회 발전을 이룩해 독재라는 것의 정당성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매번 투표철만 되면 '투표하세요'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어떤 사람이 입후보했는지 살펴야 하고, 시간을 쪼개 투표장에 나가 줄을 서서 투표를 해야 하고, 내가 뽑은 사람이 일을 잘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이 - 소위 '잘나고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척척 나랏일을 해결해 나가고 있으니. 독재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패' 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여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부패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이들의 성장은 과히 '민주주의의 위기'라 부를만 하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위기'의 중심이라 여겨지던 중국공산당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를 대비하고 있었다.

덩샤오핑조차도 공산주의 체제 백 주년, 그러니까 2049년에는 16억 5천만 명의 중국인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해져서 능히 민주주의 체제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그런 민주주의가 어떤 유형의 것인지 명시하지는 않았다... (중략) 그래서 원자바오 총리를 위시한 체제 내 자유파들은 이제 차근차근 정치개혁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개혁은 당 내에서 차츰 선거로 선출되는 직위를 늘리는 것,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나누고 중국에 지금까지 심각하게 결여되었던 "계몽시대"를 여는 표현의 자유, 법치국가의 발전 등을 세 축으로 삼고 있다.

<중국을 읽다> 중

중국이 준비하는 '민주주의'가 어떤 형태로 등장할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1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중에서도 권력이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보건 부장과 베이징 시장이 사스 사태에 책임을 물어 경질되었다. 서구 외교관은 그들을 '희생양'이라고 본다. "중국의 정치 체계에서 한 명의 장관이나 시장이 자기 행동에 전적인 책임을 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사람도 자기보다 윗선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들은 공산주의 체제 설립 후 처음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한 지도자는 경질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 지도부는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는 중국을 두려워한다. 이는 언론들이 중국에 대해서 너무 단편적인 보도만 하는 탓에 중국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화 질서 속에서 중국은 과거의 영화를 되찾았다. 그럼에도 중국은 21세기에 확고한 뿌리를 내린 듯 보이는 강대국인 동시에, 수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이며 사회적 불평등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 규모 세계 2위의 대국이면서 1인당 GDP는 90위에 그치는 개발도상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4번째로 많은 나라이자 하루 생활비 1달러 미만의 절대 빈곤층이 2억명이나 있는 나라.
중국은 개혁 30년을 거치고 나자 공산주의 체제 초기의 중국과 거의 딴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투철한 애국심, 농촌 지역의 불만,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대혼란에 대한 두려움 같은 주요 경향은 아직도 남아 있다. 중국의 오랜 야망들, 이를테면 다시 강대국으로 우뚝 서서 지난날의 모욕을 씻고 말겠다는 다짐도 여전하다.

<중국을 읽다> 중



김정일의 사망 이후, 북한 내외의 불안정한 상황에 대해 중국이 개입할 거라는 여론이 있었다. 중국이 북한을 흡수할 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견해를 내놓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침묵하고 있다.중국은 우리
나라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나라다. 근 2천년간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며 영향력을 발휘했고, 우리나라 역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012년은 청이 서구 열강의 침략에 몰락하여 멸망한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다.

이 100년 동안 중국은 이념 대립과 세계 시류의 변혁 속에서 혼란기를 보내야만 했지만, 부흥과 몰락, 혼란을 되풀이해온 이 나라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잠재력이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다시 발휘될 것이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지난 30년 간 어떤 과정을 통해 변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 최종적으로 그들이 만들어 낼 '그들만의 중국'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해 보는 것은 '대륙'이라 부르며 그들의 아이러니함을 비웃기 이전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 할 것이다.
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생물입니다.
그래서 말과 행동만 보고 그 사람의 심중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지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속도 알기 힘든 것이 사람 마음'이란 말도 있을 정도니까요.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이지만,
알아차리면 그만큼 유리한 것이 사람 마음이기에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왔습니다.

                  <'어심(御心)을 읽으시게'라는 명언을 남긴 드라마 '추노'의 이경식 대감>

임금의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한 사항이었던 조선시대와 상사의 마음, 혹은 고객의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해진 지금.
시대가 바뀌고, 인간 관계가 바뀌어도
'마음을 읽고 그에 맞추는 관계의 기술'은 언제나 유용했고, 앞으로도 유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싶다'는 욕구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했고
실험을 통해 이론으로 정립된 심리학의 지식들은 곧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들로 정리되었지요.
수많은 책들이 다루고 있는 이른바 '관계의 기술'은 모두 이런 학문적인 기반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에 맞춰 정리된 이런 기술들은 직장생활, 연애, 인간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지요.

                                   <심지어 '헌팅'에도 적용되는 관계의 기술>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사람의 마음은 단순합니다.
복잡하고 낯선 것을 분석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기에,
사람의 뇌는 진화론적으로 단순한 것을 선호하도록 발전해왔기 때문이죠.
따라서 뇌가 싫어하는 일을 피하면 상대방과 감정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관계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 감정은 결국 원초적인 것에서 비롯되니까요.



<관계의 본심>은 사람들이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 습관적으로 반복해온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우울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하며 어깨를 토닥이는 것 같은 행동이 바로 그런 일롄데요.
사실,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충돌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서로 공감할 수 없어 상대방이 자신에게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감정상태의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죠.

이처럼 <관계의 본심>은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통속적인 미덕과 관례가 오히려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면에서 특별한 책입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겸손한 사람이 호감을 준다'는 '겸손의 미덕'은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는 있지만 그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악영향을 줘 능력에 의심을 품게 만든다고 하네요.
마찬가지로 "칭찬 먼저 하고, 비판을 나중에 하는 것이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뇌가 나중에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격하게 반응하느라 먼저 나온 칭찬을 장기기억으로 치환하지 못해 결국 '기분나쁜 비판'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공자의 명언 가운데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라는 것이 있습니다.
결국 관계의 기본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이 이럴거야'라는 생각에서 베푼 호의가 오히려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이 '관계의 본심'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통속적으로 전해내려오는 인간 관계의 미덕들,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예의상'의 관례들.
이 모든 것들이 품고 있는 관계의 '함정'에서 벗어나 더 나은 관계 유지를 위한 '본심 파악'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요.

글. 오스카


관계의본심스탠퍼드교수들이27가지실험으로밝혀낸관계의놀라운맨얼?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지은이 클리포드 나스 (푸른숲,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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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여름 휴가 시즌이 끝나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일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직장인들은 서류가방을 손에 들고, 학생들은 책가방을 등에 메고 터덜터덜 각각 직장과 학교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합니다. 휴가 동안 머물렀던 휴양지의 파도소리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시원한 음료수와 눈을 깔아누르듯 쏟아지던 햇빛들은 이제 아주 오래되고 머나먼 곳의 일처럼 느껴지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다시 떠날 여행의 환상에 사로잡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가올 추석이나 중간중간 끼어있는 공휴일과 아껴두었던 휴가를 끼워맞춰 만들어낸 연휴에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아주 오래된 광고 카피를 중얼거리며, 사람들은 책상에 고개를 푹 파묻습니다. 열심히 일해야만 더 여유로운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Oldies but Goodies - 오래됐지만 좋은 광고란 이런 게 아닐까요?>

얼핏 생각하면 여행은 풍족한 현대의 산물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대시대부터 사람들은 여행을 해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선 신전에 머무르는 신관들에게 신탁을 받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종종 이루어졌고요, 지금까지도 계속되어오고 있는 성지 순례도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것이었죠.

 "여행의 역사는 아주 길다. 가장 오래된 고고학 유적지에서 방문객들이 이용하던 큰 여관과 여흥 시설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2천년도 훨씬 전에 달과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에페수스의 새 신전으로 순례자들을 불러들였다. 여신에게는 세 대륙에 지부를 두고 있는 아주 효율적인 홍보 조직이 있었다. 이 조직은 순례자들이 에페수스를 방문하고, 신전 관광을 신청하고, 은으로 된 기념품을 사 가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떠난다 쓴다 남긴다> 중에서



<이슬람교도들의 성지순례 행사인 '하지'의 모습>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여행이라지만
여행이 일상화된 요즘에는 단순한 체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남들이 다 가는 곳에 가서 똑같은 풍경을 보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설명만을 듣고 돌아오는 것은 아무래도 아쉽잖아요.

그래서인지 요즘 서점에 가면 자신의 여행 체험을 특별한 이야기로 엮어 풀어낸 여행 에세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자기가 여행지에서 얻은 독특한 경험을 풀어내어 공감을 얻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데에서 여행기를 쓰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되는 체험이 되지요.



<연암 박지원과 열하일기>

우리나라의 여행기 중 가장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바로 박지원 선생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일 거예요.
조선시대, 청나라의 건륭제의 생일 축하를 위해 떠난 사신단에 끼어 중국대륙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을 적어내려간 여행기지요.

이 책이 인정받는 이유는 당시 조선과 중국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사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재미있는 필담으로 풀어내어 문학적인 성과를 이루어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주목한 것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청나라의 이용후생 - 민중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는 점과, '중국에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발전시킬 우리의 것은 발전시켜야 한다'는 여행 중에 그가 깨닫고 느낀 바를 꼿꼿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에요.

“중국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장관, 무엇이 장관이라고 떠들지만 나로서는 똥거름 무더기가 장관이고, 깨진 기와 쪽과 버리는 조약돌을 이용하는 방법이 장관이더라.”
<열하일기> 중에서

<열하일기>는 그 안에 청나라와 조선의 실상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가득한 탓에 이것이 빌미가 되어 집안이 몰락하게 될까 두려워한 손자의 손에 의해 태워져 없어질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만약 <열하일기>가 "만리장성에 왔다, 정말 크고 방대하다!"나 "자금성에 오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같은 뻔한 감상으로만 채워져 있었더라면 태워질 위기는 맞지 않았겠지만, 후세에 길이 남겨져 읽힐 일도 없었겠지요.


 
"당신이 어디에 살든 어디를 여행하든 그곳에는 누군가가 알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 그 여행에서 플러스 밸류를 발견한다면 당신은 자신이 얻은 즐거움을 독자와 공유할 준비가 된 것이다. 여행에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내야 한다. 당신의 여행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바로 당신의 태도이다."
<떠난다 쓴다 남긴다> 중에서


연암 박지원 선생이 중국에서 본 것은 수도 없이 많았겠지만, 그가 <열하일기> 안에 남긴 것들은 모두 그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이용후생'의 태도에 기인한 것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이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 그의 마음은 고스란히 여행기 안에 남아 수백년 후의 후손들에게도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죠.
 

여행작가가 가져야 할 마인드와 준비해야할 사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책 <떠난다 쓴다 남긴다>에서도 '태도'를 강조합니다. 떠나고 쓰고 남기는 '여행기 작성'의 과정은 결국 글쓴이의 태도에 따라 비춰지는 세상의 풍경을 마음 속에 담아 풀어내는 과정일 테니까요.
이제 곧 추석이 다가옵니다. 연휴를 맞아 다시 떠날 마음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단순히 보고 즐기고 돌아오는 과정에 그치지 말고 '떠나고 쓰고 남기는' 의미있는 체험에 도전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글. 오스카


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도시라는 건 무엇일까요?
사전에서 도시는 '일정한 지역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정한 지역'이라는 범주가 애매하기에 어떤 한 지역을 두고 도시냐 시골이냐 판가름하기엔 어폐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파리 점령 인증샷 - 그는 파리에 대한 묘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도시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곳이 뉴욕과 파리입니다.
파리는 나치 독일의 총통이었던 히틀러도 동경해 꼭 '정복'하고 싶어했던 유서깊은 도시였어요.
위 사진에서처럼 실제로 프랑스를 점령하고서 에펠탑 앞에 서서 '인증샷'을 남길 정도였지요.
게다가 나중에 연합군에게 밀려 파리를 포기해야 할 때가 되자 부하에게 파리를 불태우라고 지시하는 정신병적인 모습도 보였습니다. 인류의 역사적 유물이 가득한 파리에 차마 불을 지를 수 없어 머뭇거리는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고 호통을 치기까지 했다고 하죠.
한때는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가 '불태워버리고 싶을만큼 사랑했던' 파리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예술과 패션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지요.


 




뉴욕은 빅 애플(Big Apple), 잠들지 않는 도시(city that never sleeps)라는 별명을 지닌 미국의 도시입니다.
브로드웨이,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 수많은 랜드마크와 함께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전해진 '뉴요커'로 대변되는 뉴욕 사람 특유의 생활 방식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고 한 번쯤 살고 싶어하는 도시가 되었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뉴욕'을 만들어낸 드라마 - 섹스 앤 더 시티>

우리나라에서 뉴욕이 로망의 도시가 된 데에는 2000년 들어 우리나라에 소개된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향이 큽니다. 네 명의 전문직 여성들의 사랑과 좌절, 우정, 욕망을 그린 이 드라마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녀들의 생활방식은 '뉴요커'의 삶으로 여겨져 젊은 여성들의 워너비가 되었습니다.
늦은 아침, 간편하지만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근처 식당에 가서 친구와 함께 브런치를 먹고,
마천루가 늘어선 거리를 커다란 명품 브랜드가 박힌 쇼핑백을 들고 걸어가는...
그렇다고 드라마에서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욕망'과 '소비'가 뉴요커의, 그리고 뉴욕의 전부인 것처럼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뉴욕 역시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는 '도시'고, 뉴요커 역시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채워가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요.
뉴요커들은 그들의 도시 '뉴욕'에 살기에 도시를 허상으로 채우지 않고 삶의 공간으로 대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뉴욕은 가장 완벽한 도시는 아닐지언정,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고 싶은 도시가 되는 거예요.


 

<우리 뉴욕이 달라졌어요>

<한 뉴요커의 고백>

"사람 많고 건물이 많이 모여 있다고 모두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숯과 다이아몬드가 성분은 같지만, 어느 것은 땔감이 되고 어느 것은 보석이 되는 것처럼. 도시는 환경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관계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관습이나 시골의 관계 방식과 다를 뿐 그보다 저열하다거나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도시란 스포츠카처럼 최첨단 기술로 이뤄낸 문명의 결정판인 동시에, 짬뽕 대신 자장면을 택한 것처럼 취향과 선택의 결과물인 것이다.
... 뉴요커들이 부러운 이유는 그들의 도시가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뉴욕, 그들의 도시에서 살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는 '우리의 서울'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중에서

<굳이 찾아가서 걸어야만 하는 '걷고 싶은 길'>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는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으로 '공원이나 걷고 싶은 길과 같은 자연 공간'을 먼저 떠올리는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사실, 서울은 뉴욕이나 런던 등 여타 대도시들에 비해 월등히 녹지 공간이 많은 도시거든요.
서울을 아름답고 질적으로도 풍요로우면서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취지는 좋지만, 자연적 쾌적함을 강조하면 할수록 각종 도시문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 이건 서울이 도시라서 생기는 문제라기보다 서울이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부조화라고 합니다.

"을지로 5가의 훈련원공원이 좋은 예다. 농협, 헌법재판소로 쓰이던 건물을 헐어내고 조성한 공원은 도심의 숨통을 틔울 것만 같았지만, 현재 공터에 화초나 나무가 심어져 있을 뿐 썰렁하게 방치돼 있다. 오히려 개발 전, 거리와 건물이 불러들인 사람들의 발길마저 끊기면서 소통이 아닌 도심 공동화 구역이 되고 말았다. 저자는 백 개의 상점은 수시로 사람들을 이끌고 걷게 하는 천 개의 매력을 가졌지만 도시의 공원은 밝을 때만, 그나마 쉬거나 운동할 수 있다는 등의 몇 가지 이유로밖에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한고 말한다. 심지어 어둠이 내리면 우범지대로 변하는 것이 바로 도심 공원이다. 도시란 원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위해 만든 인공의 공간인데 서울은 현재 본연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중에서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는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 마을버스, 방음벽, 남향 아파트, 방, 걷기 힘든 거리, 루체비스타, 새집증후군, 모델하우스 - 을 들어 서울이 다른 도시들처럼 동경하는 곳이 되지 못했는지에 대해 살피고, 나아가 도시 서울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서울은 우리에게 어떤 풍경으로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 것일까요?
살아가고 있는 곳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책 -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였습니다.

서울은도시가아니다
카테고리 역사/문화 > 문화일반
지은이 이경훈 (푸른숲,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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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스카

 

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유명인들의 자살이 부쩍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한 번 터졌다 하면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던 유명인들의 자살은
어느샌가 '이번에도 우울증이래? 쯧쯧'하고 넘겨버릴 정도로 무덤덤한 사건이 되어버렸어요.

<故 박용하 씨의 죽음은 친구 소지섭 씨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요>

유명인들의 자살 후에 각종 언론에서 꼭 이야기되는 게 있지요. '베르테르 효과로 인한 모방 자살 우려'예요.
베르테르 효과는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 등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라 정의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되는 '베르테르'는 무엇일까요?

<독일의 문호, 괴테>

베르테르는 독일의 문호 괴테가 1774년 발표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소설의 주인공이에요.
실연을 반복했던 암울한 자신의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제목처럼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젊은 변호사였던 베르테르는 어떤 사건을 처리하러 들린 마을에서 로테라는 여인을 알게 됩니다.
그녀에게 반해버린 베르테르는 그녀에게 이미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절망하지요.
그녀를 잊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난 그는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다가 다시 귀국합니다. 그리고 이미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된 로테를 바라만 보다가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자살을 하고 말지요.

 

<베르테르의 죽음>

이 소설은 25세의 풋내기 글쟁이에 불과했던 괴테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소설이란 방식으로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을 이야기한 이 작품은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격적인 것이었거든요. '유부녀를 사랑한 젊은 남자의 자살'이라는, 어떻게 보면 찌질하다고 여겨질만큼 통속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고뇌하는 베르테르의 심리 묘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그의 마음에 동조하게 하고, 나아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통찰을 하게끔 이끄는 데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과 디즈레일리>

 

수많은 책을 읽은 독서광이자, 한 번 읽은 책은 말 위에서 던져 버리는 습관을 가졌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전쟁터에까지 이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16번을 읽었다고 합니다. 영국 총리 디즈레일리는 이 책을 자살을 다룬 사악한 책이라고 비난하면서도 20번 넘게 읽었다고 고백한 바 있지요. 극작가 실러는 이 작품 하나로 저명인사가 된 괴테를 부러워하며 이 책이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책에 깊이 감명받은 롯데 그룹 신격호 회장은 베르테르가 사랑한 여인 '로테'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기업 이름을 지었지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그중 가장 심각했던 건 앞서 말한 '베르테르 효과'였어요. 당시 이 책에 깊게 빠진 독일 청년들 가운데에서는 베르테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도 다수 생겨났는데, 이들 가운데 베르테르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심한 경우는 책 속에서 묘사된 베르테르가 그랬던 것처럼 파란 연미복을 입고 권총으로 머리를 쏘는 것까지 따라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네요.
이런 문제 때문에 로마 교황청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해 읽지 못하게까지 했다고 합니다.

책이 출간된지 200년 후인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약 두 달간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던 인물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이죠. 그는 이러한 사회적 전염을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이름 붙입니다.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어버릴 정도로 영향력 있는 작품을 써낸 괴테.
그는 25살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오직 이 책을 쓴 작가로만 나를 기억한다'고 불만을 털어놓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가 온 인생을 다 바쳐 쓴 대작 <파우스트>마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하니까요.

노래, 영화, 드라마 -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에는 '사랑'이라는 소재가 담겨 있지요.
사랑은 우리들의 삶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삶의 모든 것과 얽혀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작품 속 사랑을 보고 깊이 동감하게 되는 것이고요.
200년 전에 쓰여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슬픈 베르테르의 이야기.
가벼운 사랑 이야기가 난무하는 지금, 한 번쯤은 이런 순수하고 깊은 사랑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젊은베르테르의슬픔 상세보기

글. 오스카


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속담 중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지요. 사자성어 '망우보뢰(亡牛補牢)', '망양보뢰(亡羊補牢)'와 같은 뜻인 이 속담은 이미 일이 벌어진 후에 후회해도 소용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망우보뢰'에 얽힌 고사에서는 이 사자성어가 정반대의 뜻으로 쓰였다고 하네요.

중국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 서로 경쟁하던 전국시대, 초(楚)나라에는 장신(莊辛)이라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때 초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왕은 양왕(襄王)이었는데 호화로운 생활에 빠져 나랏일은 뒷전으로 하고 있었지요. 충신이었던 장신은 그런 양왕에게 수없이 많은 진언을 하지만 양왕은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충신의 말을 무시한 왕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양왕 역시 적국의 침공을 받아 도성을 버리고 망명길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지요. 그때 장신은 난리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다른 나라에 가 몸을 피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이 충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양왕은 그를 다시 불러들여 이제 어찌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있을 때 잘 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상황이었지만, 장신은 충신일 뿐만 아니라 대인배이기까지 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는 말로 양왕을 진정시키며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양 잃고 우리 고친다'는 뜻의 '망양보뢰'는 원래 '늦지 않았으니 앞으로 잘해'라는 뜻으로 쓰였던 거죠.

<작년, 장마로 피해를 본 함안보 공사장>

'한반도 대운하'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제안되었다가 국민의 지탄을 받고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꾼 강바닥 뒤엎기 공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사업적으로 여러 이해 관계가 얽힌 정책이었던지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업이었는데, 누가 뭐래든 꿋꿋하게 공사가 계속되고 있어요.

<이런 기사가 뜨기도 했습니다만...>

4대강 사업의 효용성에 대한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강을 효율적으로 정비함으로써 장마, 가뭄에 대비하고 환경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순기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강바닥을 뒤엎고 시멘트를 끼얹는 것이 어떻게 환경에 긍정적 영향이 될 수 있느냐는 반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요.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까지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줘야할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태풍 '메아리'가 지나가고 본격적인 장마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이미 파엎은 강이 쏟아지는 비를 감당하지 못해 홍수 피해가 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에요. 작년에도 몇몇 공사장에서 침수 피해가 나 공사가 중단되고 출입이 제한되는 일이 벌어졌었죠. 하지만 1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가 또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에요.

<집중호우로 인해 무너진 낙동강 상주보 공사 현장>


"여보세요, 사프데르인가? 이보게, 물이 끊겼다는군."
"그래? 이를 어쩌나?"
"왜 끊겼다고 생각하나? 주지사가 묻는다는데. 기술적인 원인을 말해줘야 하거든. 자네가 알고 있으면 알려주게."
"한 가지 짚이는 게 있긴 한데. 전기가 나갔거든. 전기가 나가면 물도 안 나오겠지? 물도 같이 안 나온다니 말이야."
"그럼 물과 전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나?"
"참 나, 전기가 뭘로 만들어지나? 물로 만들어지잖아! 물이 끊기면 당연히 전기도 끊기겠지."
"하긴. 그런데 우리 팀 서기관이 그러는데, 전에도 우리가 그렇게 말했다는데? 다른 이유를 찾아보게."
"그러면 도시가스 때문이라고 하게나. 도시가스공사 탓으로 돌려. 그네들이 알아서 하겠지 뭐."

<일단 웃고나서 혁명> , '모든 것은 주지사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중

터키의 작가 아지즈 네신이 지은 풍자 소설 중 한 꼭지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도시에 물이 끊기자 주지사가 물이 끊긴 원인을 수자원공사 측에 묻자, 수자원공사는 수도사업본부에 원인을 묻고, 수도사업본부는 부속 부서의 수석 기술자에게 원인을 묻고, 수석 기술자는 휘하 기술자에게 그 원인을 묻지만, 결국 아무도 단수의 원인을 알지 못해요. 원인을 파악해 다시 물이 나오게 하는 문제는 쏙 들어가고, 누구에게 단수의 책임이 있는지 서로 떠넘기기 시작합니다. 서로 책임을 '돌려막기'하던 그들 사이에서는 도시가스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결국 문제와는 전혀 상관 없는 지진 탓을 하기까지 이르게 되지요.

... "그것도 전에 써먹은 거네."
"그렇다면 라디오 때문이라고 하게나. 라디오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단수되었다고."
"속아 넘어가지 않을 걸세."
... "아, 지진이다, 지진!"
"잠깐만, 여기도 흔들리는데. 전등이 흔들려."
"아, 알았다, 찾아냈어! 당장 주지사에게 전하게. 지진이 일어났다고 말이야, 지진이. 지진이 일어나서 물이 끊겼다고 하게나. 그럼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할걸. 이건 정말 신께서 도우신 걸세. 지진이 일어났는데 우리가 뭘 어쩌겠어, 안 그런가?"
"맞네, 이 말은 철석같이 믿을 테지."

<일단 웃고나서 혁명>
'모든 것은 주지사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중

<이건 모두 미국 잘못입니다. 미국을 탓하세요.>

보고 있으면, '돌려막기'하는 건 카드 빚만이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한심한 변명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 슬프구요.

뭐, 앞으로 태풍이 최소 두 번 더 온다고 하고, 이번 장마철에 내릴 비의 양도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과연 4대강 준설이 '장마와 태풍을 넘기는' 역할을 해낼지, 아니면 '장마와 태풍에 넘어가는' 역할을 해낼지는 두고 봐야겠죠.

<... 다만 작년처럼 광화문 침수 사태만은 다시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오스카

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언제 들어도 익숙한 노래, 아리랑>

애국가와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부를 줄 아는 노래, 아리랑입니다.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지역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노래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지요.
흔히 우리가 '아리랑'이라고 부르는 노래는 경기아리랑입니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아리랑을 불렀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노래라는 것은 분명하지만요.
아리랑은 주로 서민들이 일하면서 부르던 노동요였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노래자랑 대회를 열었는데,
그때 아리랑이 크게 인기를 얻어 궁궐에서까지 불리었다고 하네요.


<영화감독 나운규 - 예술가의 포스가 느껴집니다>

아리랑은 일제시대때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독립운동가였던 나운규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그 내용에서도 항일의식을 찾을 수 있어요.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정신이상자가 되어 돌아온 오빠가
친일파의 하수인에게 희롱당하는 동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정신을 차리지만,
살인 혐의로 순사들에게 끌려가는 내용인데, 끌려가는 오빠가 '나는 이 삼천리에 태어나 미쳤다'라고 부르짖는 장면과 함께 '아리랑'이 흘러나온다고 해요.



<영화 '서편제' 중 밀양아리랑>

영화 <아리랑>은 한국 영화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원본 필름을 구하러 다녔지만,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국문학계의 <삼대목>과 더불어 발견하면 대박이라는 '보물'로 자리잡고 있는 물건이래요.



<대지>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펄 S. 벅은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 <살아 있는 갈대 (THE LIVING REED)>의 표지에 아리랑의 가사를 새겨 넣었어요.
<살아있는 갈대>는 구한말에서부터 해방까지 한 가족 4대의 일대기를 그린 내용인데, 곳곳에 작가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하네요.








노래의 제목이자 반복되는 구절인 '아리랑'의 뜻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신의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말도 있고, 그냥 박자를 맞추기 위한 여흥구라는 설도 있어요.

<'쓰리랑'이 등장하는 진도아리랑>

진도아리랑에 '아라리'와 '쓰리랑'이 등장하는 걸 보고
'아리랑'과 더불어 한 가족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요...


<통일 한반도기>
남북에서 고루 불리는 노래이다보니 통일된 한국의 새로운 국가로 아리랑을 쓰자는 의견도 나온다고 해요.
실제로도 올림픽, 아시안게임이 다가오면 항상 논의되는 게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인데 이때 선수단가로 주로 꼽히는 게 아리랑이지요.


이토록 유서 깊고, 우리 민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노래인 아리랑.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이 '아리랑'을 자국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조선족도 중국의 종족이니만큼 이 모든 것도 중국의 문화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 연변의 조선족들이 부르는 아리랑과 판소리, 농악놀이, 한복, 전통혼례식까지 한데 묶어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네요. 전부터 고구려와 발해도 중국의 고대국가라고 주장하며 소위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했던 중국이니만큼 이번 사건 역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유네스코 기>

중국이 이번에 우리나라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문이에요.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유네스코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유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해져 특별관리를 받게 되거든요. 국가의 위상에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라 다들 자국의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 힘쓰죠. 그런데 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선 먼저 자국의 국가문화유산으로 정해져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어요. 그래서 중국이 아리랑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나선 거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아리랑을 국가 문화유산으로 정해놓지 않고 있었어요....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874545_5780.html
<이 사건을 보도한 MBC 뉴스 -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됩니다>

문화재청이 뒤늦게 아리랑을 국가 문화재로 지정하겠다고 밝혔고, 내년에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하겠다고 했지만, 중국 역시 동시에 신청할 것 같다고 하네요...


<뉴욕 필하모닉이 북한에 가서 연주한 관현악 버젼의 아리랑>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리랑'을 우리 노래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더 어이가 없는 것 같아요. 여러모로 안타까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좀 더 '아리랑'에 대해 많이 알고 아끼는 노력을 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누가 뭐래도 아리랑은 오랜 시간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우리의 노래니까요.

참조 : 그림책 <아리랑> 2011년 7월 출간 예정 



<아리랑>은 푸른숲 주니어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층을 대상으로 내놓은 첫번째 그림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아리랑 모르면 간첩'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리랑은 우리 나라 대표 민요인 게 분명하지만,
정작 이번 문화유산 등재 문제가 불거지는 걸 보고 아리랑에 대해 뭔가 이야기를 하려 해도 제가 아리랑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나 적더라고요. 마치 '독도는 우리땅'인 것이 당연하다 말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는 똑부러지게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아이러니하게도 '아리랑'에 대한 참고 자료를 가장 많이 찾을 수 있었던 것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 책, <아리랑>이었어요. 필름마저 사라져버려 그 실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나운규의 <아리랑>을 그림동화로 풀어내 그 내용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고요, 우리나라의 대표 아리랑인 경기, 정선, 진도, 밀양아리랑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정보를 담고 있어 아리랑에 대해 좀더 잘 알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너무 가까이 품 안에 꼭 안고 있으면 그게 무엇인지 볼 수 없는 것처럼,
아리랑 역시 '당연히 우리 것'이라 생각해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한발짝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우리의 소중한 노래 '아리랑'을 바라본 이 책.
아리랑에 대해 알아보려 해도 쉽게 알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푸른숲 정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