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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에세이] 어쩌다 보니 어른, 어른이다 보니 도망치고 싶은 :: 2009/11/13 09:05

옛날에는 저,
‘어른’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런 식이었어요.

“나 오늘 집에 일찍 가야겠어.”
“왜?”
“흐르는 물에 귀 씻으러.”


‘서른 살까지만 살고 죽겠다’라고는 죽어도 말 못하지만, 그래도 ‘어른이 된다는 건 죽음이야!’ 이런 생각은 했어요. 왜 그랬을까. 애가 셋이라는데 일주일에 일곱 번 이상 동아리방에 놀러오는 선배 보면서 생활이 지난하다는 생각을 했고, 점심때쯤 명동에서 몰려나오는 넥타이족 보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니라 ‘목구멍이 협착’이었어요. 저는 생활의 지속과 유지, 그러면서 고정되어 가는 것들, 누군가를 원망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원망하고- 이런 것들을 무서워했던 것 같아요.

이젠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 구려요’라고 말하는 친구들 앞에서 딱 한 음절밖에 입 밖에 내지 못해요. ‘쩝’. 왜냐면 그런 세상을 만든 책임, 방관한 책임, 아니면 감시에 소홀했던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책임이 저 혼자에게 있다고는 말 못 하겠어요. 하지만 나는 어째서 한 음절밖에 할 말이 없을까. 어째서 승리의 기억을 만들지 못했을까. 단 한 번이라도, ‘이놈들아, 너네들 다 뿡이다!’ 이랬던 기억. 사람들이 ‘그게 무슨 승리?’ 하더라도 어쨌든 나에겐 승리. 이런 것. 장까지 활발하게 움직이는 유산균처럼, 내 마음 깊숙한 데까지 가서 반짝반짝 나를 빛나게 만들어 줄 만한 기억. 그런 게 있었다면 좋았겠다, 그러면 “세상은 ‘요따우’여도 우리 이렇게 재미나게 살면서 복수하자!”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은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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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있어요. 그 녀석한테 하고 싶은 거 질러 버리라고, 세상은 다 네 거라고… 그렇게 말하긴 좀 미안해요.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생각하고, 홀로 독야청청하기보다는 무리를 만들어서 서로 지지하고, 타인의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이런 사람들 얘긴 해주고 싶어요. “세상 다 네 거 아니어도 돼. 먹고사는 문제도 엄청 중요하다, 너. 그런데 정말 오래 가려면 뭐가 있어야 되는 줄 알아? 재미!”

사실 저에게도 아직 꿈이 있긴 해요. 밴드를 만드는 거예요. 이 밴드에서는 누구도 나이나 힘으로 다른 이를 제압하거나 억누르지 않아요. 밴드는 조화가 필수니까 구성원들끼리 잘 어우러져서 연대해야 되겠죠. 연대하면 사는 것이 덜 불안할 거고요. 창조적 영감을 나누면서 당연히 즐거울 거고, 즐거운 기운이 모여 만든 음악은 분명 아름답겠죠. 우리는 그 음악을 들고 슬픔이 많이 고인 곳에 가서 노래하고, 슬픔을 막 흩뜨리는 거예요. 거름으로나 쓸 수 있을 정도로 콩콩 빻아서요. 그런데 백일몽 카테고리에 있던 이 일을 진짜로 해낸 사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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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서라는데 정말 실용적일까요? 저는 ‘실용’이라는 말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서…. 어쨌든 이런 시도를 해본 사람이 있다는 것이 용기가 돼요. 이게 제가 찾는 ‘작은 승리의 기억’이라는 느낌이 훅-.

어른이 되고 보니 엄마가 거적때기 같다고 하는 옷을 맘대로 입는다거나, 토요일에 오후 네 시까지 잔다거나, 내 뒤치다꺼리를 내가 하는 자유, 이런 것들이 아주 편안하고 좋아요. 하지만 등을 떠밀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된 듯한 이 기분, 이대로 삽십 대를 지나가도 되나 싶은 불안함, 나는 어른 노릇을 제대로 하면서 살고 있나 하는 미안함. 이런 것들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제가 거치고 있는 ‘어른’이에요. ‘어른’이라는 말에 귀 씻던 청년치고는 참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네요. 다시 한 번 이 대목에서 쩝.

글. 주니어팀 이진규

2009/11/13 09:05 2009/11/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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