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퇴근길은 남들보다 좀 길다. 우리 회사에서 내가 제일이다.(뭐든지 제일인 건 좋은 거다.)
버스를 삼십 분 넘게 타고, 지하철을 사십 분 타고, 십 분 걷는다. 밀리고 그 사이사이 기다리고 이동하는 시간을 더하면 족히 두 시간은 걸린다. (출근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종종걸음에, 지하철 운행간격도 짧고, 셔틀버스는 대기하고 있고, 자유로는 막히지 않으니 퇴근길보다 삼십분 정도 절약된다.)
출근길 최고 기록은 장장 세 시간이다. 비 오고, 셔틀버스 놓치고, 콜택시 거부당하고, 자유로 꽉 막혀 일반버스 들어오지 않던, 줄줄이 사탕처럼 일이 꼬인 그 월요일. (그런데 그날 난 안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애꿎은 깨진 보도블록을 발로 헤집고 있었는데, 반짝이는 오백 원을 발견했다. 보도블록을 깨고 땅을 파면 돈이 나온다는 사실! 하늘이 나에게 준 위로금 오백 원으로 난 요구르트를 사 먹었고 비 내린 것을 용서해 주기로 했다. 단순하긴.)
아무튼 난 매일이 관광 다니는 기분이다. 셔틀버스회사 이름도 우주 여행사이니, 우주 여행을 다니는 셈이라며 위안 삼곤 했다. 그도 시들해져 이젠 책 읽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퇴근이 늦으니 다른 볼일 보기 바쁘고, 저질 체력으로 누워 책만 들면 잠이 쏟아져 집에서 책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래저래 출퇴근길에 목을 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흔들리는 버스에 글자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는 날도 있었지만, 이젠 만원버스에 서서도 읽을 수 있는 놀라운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부작용도 있다. 출근길에 읽던 책이 재미있으면 빨리 퇴근하고 싶어진다.
에세이는 하루면 족하다. 소설은 삼일, 교양서는 오일, 물론 책의 두께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학교 다닐 때 버스나 화장실에서 공부한 것은 꼭 맞힐 수 있었듯이,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의 독서는 집중도가 높다. 또 적어도 삼십 분은 꽉 차게 타니까 언제 내릴까 조바심내지 않고 읽을 수 있어 진도 나가기가 더없이 좋다. (부작용이 하나 더 있다. 출판사 다니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 책값이 많이 든다. 회사에서 밥 주니, 그 돈으로 책 많이 읽으란 말씀인가 보다 생각한다. 그럼 부작용이 아닌가.)
이참에 한비야 선생님을 따라 ‘1년 책 100권 읽기’에 도전해 보련다. 일 때문에 읽는 책과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제하고 말이다. 긴 출퇴근길 덕분에 교양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행운을 얻겠다. (체력 관리가 관건이다. 보약이라도 한 제 지어 먹을까? 봄가을 빠짐없이 보약 먹던 복 터진 한의사 며느리일 때가 좋았는데, 지난해 돌아가신 자상한 아버님이 그립다.)
그래도 비 오는 날의 출퇴근길은 두렵다.
글. 주니어팀 최순영
푸른숲
2009/07/14 10:25
2009/07/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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