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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시장주의자의 고백 :: 2009/08/2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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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쓴 죄로 ‘좌빨’이란 칭호를 얻게 되었지만, 저는 스스로를 시장주의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류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시장의 힘에 대한 신뢰는 마치 등록상표와도 같다고 말할 수 있지요. 솔직히 말해 진보의 성향을 갖는다고 하기에는 시장의 힘에 대한 저의 신뢰가 너무 큰 편입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시장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장주의자로서의 제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한미 FTA - 걸어 볼 만한 도박인가?>입니다. 자유로운 무역에서 얻는 이득은 이것이 갖는 문제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믿음이야말로 시장주의자에게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그 믿음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시장주의자임을 고백한 셈입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미 FTA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걸어볼 만한 도박이라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제가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것은 시장근본주의, 즉 시장의 힘에 대한 맹신입니다. 시장은 결코 완벽한 제도가 아닙니다. 시장의 실패를 가져다주는 수많은 요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잘 드러났듯, 시장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도록 방치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시장의 힘을 적절히 활용하되 어떤 선을 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습니다.

<미국 금융위기의 교훈>은 시장근본주의자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입니다. 미국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는 시장의 탐욕이 빚은 무서운 결과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금융위기가 정부의 실패로 인해 발생했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솔직하게 시장의 한계를 인정하는 용기를 발휘하도록 촉구하는 데 이 글의 목적이 있습니다. 

<말에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짜증나는 차량 5부제>에서도 저의 시장주의적 성향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참여정부 때 쓴 글이지만 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어떤 현안문제가 있을 때 정부는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현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대 정부가 모두 그런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걸핏하면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은 편의주의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규제보다는 가격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정책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규제가 확실한 효과는 내를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정책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 시장의 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규제를 선호하는 태도가 나오는 겁니다. 현 정부가 좋은 예지만, ‘시장친화’를 부르짖으면서 규제를 일삼는 태도는 사이비 시장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주택시장이나 교육문제와 관련해 정부 개입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제가 ‘큰 정부’를 선호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언제, 어느 경우에서나 큰 정부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박, 마약, 그리고 비만세>가 그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정부가 ‘큰 형님’(big brother) 노릇을 하는 데 대해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도박과 마약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도박과 마약인데 그대로 놓아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카지노, 복권, 경마 같은 것은 도박의 일종인데도 전혀 통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일관성의 결여를 어떻게 정당화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관성 없는 정책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요.

또한 정부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도박과 마약에도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시시콜콜 간섭하다가는 정부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 것까지 통제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사실 정부가 비만세를 부과한다는 것은 이미 그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글에서 저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보수적 성향의 자유주의자(libertarian)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를 ‘큰 정부’의 지지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저는 어떤 정책이 보수성향의 것인지 아니면 진보성향인 것인지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정책은 그것이 갖는 합리성에 의해 궁극적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 제 신념입니다.

이 장의 나머지 글들은 경제학자로서의 제가 수필을 쓰는 기분으로 쓴 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경제학자들은 수필을 써도 이렇게 골치 아픈 것만 쓴다고 말하실지 모릅니다. 경제학의 별명이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 그러니 경제학자인 저도 늘 우울한 글만 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9/08/26 14:42 2009/08/2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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