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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 2009/05/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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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성 야고보의 아름다운 전설이 시작된 길,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라고 불리는 길, 
   처음엔 혼자 시작해도 거의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끝나게 되는 길
   평범한 이들을 위한 그 길에서, ‘나’ 그리고 ‘그들’의 산티아고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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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을 믿지 않는데, 만약 신이 있다면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해. _ ‘베드 호퍼’ 마틴

난 종교가 없어. 현실 세계의 종교는 권위적이라서 싫거든. 그런데 여기선 이상하게 계속 기도를 하고 싶어져. _영국에서 온 조지 할아버지

여기 오기 전에 나는 늘 내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겁쟁이 사자 같았어. 어디서 용기를 구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자 알지? 내가 딱 그 꼴이야. […] 천 년이 넘도록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카미노를 걸었으니 이 길이 우리에게 줄 영적인 에너지가 있을 거야. […] 난 확신을 갖고 싶어. 일상에 돌아가도 무뎌지지 않는 확신, 사소한 어려움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용기 같은 거 말이야. _겁쟁이 캐나다 아줌마 마농

카미노가 나한테는 바이러스 같아. 사람들을 만나는 게 가장 좋지. 힘이 남아 있다면 내년에도 다시 걸으러 올 거야. _독일 할아버지 울프

여행이 내게 무엇이었는지는 여행이 끝나고 한참 지난 뒤에야 알게 되겠지. _독일 청년 스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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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인 보행의 리듬에 맞춰 오래 걷다 보면 다리의 뻐근함, 발의 통증, 배낭의 무게에 대한 의식이 서서히 지워질 때가 있다.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과 온 신경이 순수한 진공 상태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 내 안의 텅 빈 공간, 어떠한 생각도 없이 잠시나마 자아의 하찮은 주장을 몰아낼 수 있는 마음속의 공간과 마주하는 순간.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그걸 알아차릴 때마다 여행의 목적을 완수한 듯 뿌듯해졌다. (p. 143)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들었다. 나나 일마즈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평소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속마음과 비밀을 여기선 쉽게 털어놓곤 했다.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종종 치밀어 오르는 고해의 충동 때문일까. 한국 순례자들보다 낯선 외국인과 낯선 언어로 이야기할 때 더 쉽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아니면 어떤 사람들은 카미노를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라고 부른다더니, 이것도 카미노가 은연중 보여주는 경이 중의 하나인 걸까. 어쨌든 그렇게 내가 속한 현실에서 무겁게만 느껴지던 일들을 낯선 사람들과 서로 털어놓고 나면,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의 손아귀 안에서 버둥대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묘한 연대감 같은 게 뭉클 피어났다.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 시간의 횡포에 대해 웃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p. 219)

카미노에서 나는 스스로가 아주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잘 씻지도 못하고 화장도 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이 평소보다 더 예쁘고 생기 있고 젊다고 느꼈다. 지도도, 가이드북도 없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가끔 앞날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 툭하면 발목을 접질렸던 장소가 주로 평탄한 길이었다는 점을 떠올렸다. 전진하며 올라가는 길에선 아무리 힘들더라도 다리를 다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사실’로 겪어 아는 것은 내가 걷는 길의 아름다움뿐이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상상으로 내가 아는 길의 선물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을, 내게 벌어진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이 길의 굽이굽이에 숨겨져 있을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세상엔 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누구도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완벽해 보이는 운명을 흉내 내려 안달하지 않고 나 자신의 불완전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카미노를 걸었다고 해서, 어떤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달라지진 않는다. 우리는 다만 변화하기로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대개의 변화는 늘 느리게, 알아차리기 힘들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속도였다. 내 속도에 맞지 않을 다른 지름길을 꿈꾸던 백일몽에서 빠져나와,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뎌야 했다. (pp. 29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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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맨 얼굴의 나를 만나는 강렬한 경험,
그곳에서 내 안의 노란 화살표를 발견하다


산티아고 하면 진지한 추구를 전제하는 ‘순례’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저자는 애초부터 깨달음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고 고백한다. 어떤 장소에서 정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진작 지리산 꼭대기, 설악산 능선, 페루의 마추픽추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어야 했다”며. 저자는 카미노가 “한쪽 방향을 향해 800킬로미터가량을 걸어가는, 안전하고 단순한 길, […] 길을 헤맬 걱정도, 내일은 어디에 갈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배낭을 메고 걸어갈 체력만 있으면, 그저 화살표를 따라 쭉 걷기만 하면 되는 길”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선택했다. 오로지 ‘지금,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저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낯선 길 위에서 평소에는 지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치사하고, 소심하고, 까탈스러운 모습들이 부지불식간에 수시로 밀려드는 것에 당황하지만 마침내 이것이 결국 길이 주는 선물이라고 받아들인다. 이처럼 일상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짧지만 강렬한 경험을 통해서 저자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마흔을 넘어서도 여전히 흔들리는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 하지만 그런 모습을 거부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끌어안아 삶의 긍정성으로 전환시키기. 이는 마침내 이런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나는 이미 마음 안에 불투명하지만 조심스럽게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노란 화살표를 갖고 있는데, 화살표가 가리키는 길이 진창길이나 험한 언덕일까 두려워 주저하는 것은 아닐까. 중요한 건 화살표를 따라 산길을 오르거나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저 너머엔 뭐가 있을까’ 하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를 품고 지금 당장은 땅에 밀착해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는 인내. 그것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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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지은이 : 김희경 

툭하면 넘어지면서도 오래 걷기와 등산을 좋아하고, 별 재능이 없는 줄 알면서 글쓰기를 좋아하며,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사람을 좋아한다.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 100가지’ 리스트를 몇 년째 만드는 중인데 ‘산티아고 가는 길 걷기’는 그중 3위였다. 인류학을 전공했고 17년째 직업 기자다. ‘인간의 거울’이라 할 인류학 공부와 정보를 요리하는 기자의 경험을 결합해 나 자신에게 세상의 풍성한 결을 설명하고 싶고,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들을 만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미국에서 MBA를 한 뒤 영화가 뜨고 망하는 이유를 분석해본 《흥행의 재구성》(2005)을 썼다. 블로그 ‘그녀, 가로지르다’(http://www.bookino.net)를 운영하고 있다.

2009/05/12 20:09 2009/05/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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