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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김만덕] 그녀는 기녀였을까 아니였을까 :: 2010/03/11 20:23

KBS 역사 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지난 주말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미연의 복귀작’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것과 달리 초반 방영분에서는 만덕의 어린 시절을 다루느라 이미연 씨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역들의 좋은 연기와 악역들의 포스 때문인지, 간만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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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역’과 좋은 ‘악역’>

드라마를 보는 과정에서 재미를 위해 각색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김만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아요. 체재공이 남긴 『문암집』의 「만덕전」이 그나마 믿을만한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요. 소설가 정비석의 『명기열전』에도 만덕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작가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덧붙인 픽션에 불과하다네요.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정창권)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다는 건 작가에게 있어서 고역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죠. 시간에 묻혀 가려져 있는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멋지게 그려낼 수 있으니까요. 그럼, 여기서 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재미를 위해 각색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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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쁘신 건 사실입니다만...>


1. 너무나도 화려한 만덕의 의상 - 그녀는 기녀였을까? 아니었을까?
  네, 바로 드라마의 처음 부분이죠. 이미연 씨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합니다. 기생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옷을 입고 굶주려 죽어가는 제주 주민들 사이를 거닐며 천사처럼 구원의 손길을 펼치는 만덕.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서는 완벽한 자태(?)지만, 실제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는 장면입니다.

  김만덕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기녀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기적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체재공의 「만덕전」에서는 만덕이 스무살 전후에 기생이 천하다는 걸 알고 양민 신분을 회복하였다고 적혀 있지만, 『정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후에 만덕이 정조를 배알하는 일을 기록하면서 그녀를 ‘제주기(濟州妓) : 제주의 기녀’ 혹은 ‘탐라기(耽羅妓) : 탐라의 기녀’로 적고 있어요. 이는 만덕이 끝까지 기녀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죠.

  체재공이 만덕을 높여주려 기녀 신분에서 면천(免賤)한 것으로 적은 것인지, 아니면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이 만덕이 신분을 회복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적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덕이 스무살 무렵 그동안 모은 돈을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해 거상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드라마가 만덕전의 설정을 따라갈지, 실록의 설정을 따라갈지, 아니면 작가가 꾸며낸 독자적인 스토리로 나아갈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항상 ‘자냥(없을 때를 대비하여 있을 때 아끼고 모아 두는 습관)’하며 살았던 제주 여인들의 습관을 볼 때, 만덕에게 화려한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여주인공은 항상 예뻐야만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지만 말예요.

2010/03/11 20:23 2010/03/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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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막장이네요, 막장이야 - 치정이 난무하는 신화 (상) :: 2010/03/11 10:00

막장이네요, 막장이야 - 치정이 난무하는 신화 (상)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후략)'

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 중 일부입니다. '낳고, 낳고, 낳고'가 반복되는 이 족보를 그리스 - 로마 신화의 족보로 가져 오면 이렇게 되겠네요.

‘제우스가 헤라에게서 헤파이스토스와 아레스, 에일레이티이아와 헤베를 낳고, 또 제우스가 이오에게서 에파포스를 낳고, 또또 제우스가 레다와 폴리데우케스와 헬레네를 낳고, 제우스가 레토에게서 아폴론을 낳고, 제우스가 마이아에게서 헤르메스를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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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 근엄하지만 난봉꾼이랍니다.

이처럼 제우스는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 여자를 밝히기로 유명한 신입니다. 멀쩡한 아내 헤라를 내버려두고 인간과 요정을 가리지 않고, 또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유혹해 자손을 퍼뜨리지요. 신화 속 유명한 신들이나 영웅들은 대부분 제우스의 아들이자 딸인 경우가 많아요. 신화 최고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헤라클레스나, 스파르타의 선조인 라케다이몬, 크레타 왕 미노스, 테베 왕 암피온 등등... 뭐, 올림푸스 12신 가운데에서 제우스의 아들이 다섯명이나 되니 말 다했죠.

학자들은 이러한 제우스의 난봉질(?)이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던 그리스가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각지의 여러 신들을 하나로 엮을 필요가 생겨나 한 족보로 각종 신과 영웅들, 왕들을 끌어 모으는 데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뭐, 이야기 속 숨겨진 상징이나 의미는 잠깐 접어두기로 하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내의 유혹’ 뺨치는 막장 스토리가 신화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남들이 뭐래도 내가 하면 사랑이야 - 편력의 제왕 제우스
앞서 말했지만, 제우스는 헤라 외에 수많은 여자들을 유혹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레다의 경우엔 백조의 모습으로 변해 접근했고, 에우로페에겐 하얀 소로 변신해 그녀를 등에 태워 납치했죠. 그중 최강은 다나에의 경우입니다. 다나에는 손자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들은 아버지에 의해 사나운 개들이 지키는 높은 탑에 갇히게 됩니다. 개미 하나 드나들 수 없는 엄중한 경비 속에 다나에는 안전하게 보호되는 듯 했지만, 제우스는 몸을 황금비(여기서 비는 rain. 하늘에서 내리는 비입니다.)로 변신시켜 탑 창틀 사이로 스며들어와 다나에를 유혹하죠. 이 정도면 거의 병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최근에 큰 이슈가 된 모 골프선수의 편력증도 병으로 밝혀졌다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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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에> - 메두사를 죽인 영웅, 페르세우스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제우스의 그 많은 여자들 가운데 먼저 제우스를 유혹한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거나, 달아나려는 여자들에게 제우스가 강제로 접근한 게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는... 무려‘정숙의 여신’이었습니다. 마치 정숙하신 B사감이 기숙사생들에게 부린 히스테리처럼, 헤라는 남편 제우스의 여자들을 하나 둘 응징(?)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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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와 헤라> - 이제 헤라의 응징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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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먹고 사는 인생을 꿈꾸는 20대.
음악, 소설, 역사, 드라마 애호가이자 아이폰 탐구자.
Mika, Muse, Radiohead, Green day를 좋아합니다.
최근엔 추노와 The ting tings에 빠져 있습니다.
얄밉지만 사랑스러운 언년이 같은 글을 어떻게 하면 더 아껴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글. 홍보팀 김현철

2010/03/11 10:00 2010/03/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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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임혜지의 글쓰기 :: 2010/03/1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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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소에 한국말을 쓸 일이 없기 때문에 꿈도 독일어로 꾸고 욕을 해도 독일어로 먼저 나와요. 그런 생활 속에서 한국어로 글을 쓰자니 평범한 단어가 금방 생각나지 않아 늘 애를 태우곤 합니다. 특히 독일어로 작문을 하거나 독일어 책을 읽고 나서는 한국어로 글 쓰는 일에 아주 애를 먹지요. 한 사흘 정도 엄청난 집중력을 바쳐서 씨름하고 나서야 평범한 한국어로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나오는 결과에 비해서 바치는 노력이 엄청나게 큰 편입니다.

그래도 꾸준하게 글을 쓰는 이유는 글 쓰는 것이 제게 마음의 평화와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에요.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을 논리적으로 하게 만들어 주거든요. 사람이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됩니다. 저의 글쓰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참으로 수지 안 맞는 사업이 되겠지만 이렇게 삶의 질의 차원에서 생각하면 공짜로 이런 기쁨을 얻는 거니까 대단히 수지 맞는 장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언어에 관해서 재미난 경험을 하나 했어요. 모국어를 한번 잃어버렸던 경험이요. 한동안 독일어로 글 쓰고 독일어로만 생각하다 보니 한국말을 거의 다 잊어버렸지요. 지금부터 6년쯤 전에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한국어를 다시 공부했어요. 더듬더듬 하루에 한 문장씩 써서 인터넷 모임에서 대화도 하고 토론도 하는 사이에 한국어 실력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동안 독일어로 글쓰는 훈련을 한 것이 한국어에도 고스란히 적용이 되더군요.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한다는 행위기 때문에 깊이 사고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다른 언어로도 대입이 가능합니다. 아무래도 제겐 한국어가 제1언어니까 아주 쉽게 되돌아오고 또 금방 발전하더군요.

이 경험을 통해서 전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하나는 모국어를 잘 한다는 것은 자긍심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에 따라 생각하는 패턴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하는 패턴에 따라 거기에 맞는 언어가 형성되어서 그런 거겠지요. 남은 어떤지 몰라도 제게 있어서 한국어는 분위기를 정확하게 묘사하기에 좋은 언어이고, 독일어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기분을 잘 따지고 독일 사람들은 팩트를 잘 따지는가 하고 저 혼자 웃지요.

저는 글을 써놓고 아주 오래 검토하고 만지는 습관이 있어요. 내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과 내가 써놓은 글이 일치하는지 끝없이 비교하고, 완벽하게 일치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지요. 오래 다듬을수록 글이 쉽고 간단해져요. 저도 아름다운 표현과 문장의 편안한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정확한 전달을 가장 높이 칩니다. 그래서 뜻을 명확하기 위해서라면 같은 단어를 두번 세번 반복하거나 표현이 촌스러워지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지요.

글이 어떤 때는 후루륵 잘 써지고 어떤 때는 머리를 쥐어짜듯이 힘들잖아요? 제 경우엔 힘들여 쓴 문장이 제일 좋은 문장이더군요. 잠깐 생각하고 쉽게 써내려간 글은 일단 시원해 보여도 논리의 비약이 심하고 조리가 없어서 나중에 정리하자면 애를 먹어요. 나도 잘 모르는 것을 어렴풋이 써놓았는지 겉보기에만 그럴 듯할 뿐 전달하려는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아예 없는 문장도 있지요. 촌스러워도 벽돌 쌓듯이 차곡차곡 쌓은 문장이 논리적으로 더 탄탄하데요. 저만 그런 건지, 글 쓰는 다른 분들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저는 글을 쓸 때에도, 다 쓰고 나서도 행여 진실이 왜곡되거나 내 존재가 미화된 부분은 없는지 검토하고 고민합니다.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글은 나를 위해서 쓰는 거라고. 그런데 나를 속이면 글을 쓰는 이유가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언젠가 깨달았어요. 사람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라 할지라도 글을 쓰는 순간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글을 쓰는 그 순간 지나간 사건이 새로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건 자신의 고유한 시선으로밖에 사물을 볼 수 없어서 그런 거라는 걸 법륜스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럴수록 더욱 정직하게 쓰려고 애쓸 뿐, 글에다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쓰는 글일지라도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소통은 나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지요. 나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려는 이유는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발전하자는 뜻 아니겠어요? 하지만 저는 남이 제게 참견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저도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독자들에게 저의 삶이나 저희 가족의 모습을 세세하고 솔직하게 보여드리는 것으로써 독자들께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넌지시 보여드려고 합니다. 단지 저의 길이기 때문에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죄의식을 주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이런 길도 있다고만...

참 재미있는 건 제가 독자들의 반응을 통해 세상을 좀 더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이랍니다. "어휴, 저 사람들은 자동차도 없이 어떻게 사냐? 저렇게 아끼면서 어떻게 사냐?" 하는 말을 들으면 저야말로 신기합니다. "어머, 이상하다. 그냥 없이 사는 게 더 쉽지 돈 많이 벌어와서 자동차 사는 게 더 쉬운가?"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그제서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일기를 쓸 때조차 나만의 소설을 쓸 수밖에 없도록 좁은 시각을 가진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시때때로 깨닫는 것은 유익하고도 유쾌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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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35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스위스관 설계 및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프리랜서로 문화재 실측 조사와 발굴 연구를 하고 있고, 일감이 없을 때는 글을 쓰고 살림을 하느라 허둥댄다. 성격은 극과 극이지만 이상(理想)이 맞는 독일 남자와 결혼해 20년 넘게 같이 살고 있다. ‘우리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성격은 좋으니 걱정 마세요’라며 선생님을 위로하고 딸에게 대놓고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는 대범한 엄마이지만, 댄스 학원에서 남편과 왈츠를 출 때가 가장 행복한 만년 소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프리드리히 바인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독일어),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이 있다. 


2010/03/10 14:20 2010/03/1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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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혜지의 책에 대한 단상들 :: 2010/03/09 14:12

외국에 살면서 저는 거의 모든 독서를 독일어로 했어요. 그 중에서도 '책 읽어주는 남자' (Der Vorleser, Bernhard Schlink)와 '느림의 발견' (Die Entdeckung der Langsamkeit, Sten Nadolny)이 가장 인상에 남는 책이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책이고, 아직도 가끔씩 다시 읽는 책입니다. 앗, 그러고 보니까 둘 다 독일 작가의 책이군요. 요즘은 세월이 좋아졌지만 인터넷을 알기 전에 저는 한글로 된 활자에 굉장히 굶주렸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몇 권 되지 않는 한국책은 내용이 뭐든 간에 거의 달달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지요. 저는 책을 원래 속독을 넘어 폭독에 가까울 정도로 빨리 읽어치우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마음에 드는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늘 새로운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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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첫 책은 독일어로 쓴 전공서적이에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을 근년에 한국어로 썼지요. 제가 그동안 써두었던 에세이들 중에서 건축에 관한 내용만 추려서 출판한 것이 재작년에 나온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한겨레출판)'입니다. 그러고나서 시사와 일상에 대한 에세이들이 좀 남았길래 제가 출판사에 여쭤봤습니다. 사실 저는 대운하라던가 인권, 성매매 등 시사에 관한 글을 출판하기를 내심 바랬지요. 그런 것이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푸른숲에서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모토로 소소한 일상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꼭지들을 절묘하게 조합해서 '고등어를 금하노라'로 멋지게 묶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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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는 소설도 썼답니다. 저의 첫 한국책인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을 준비하면서 저의 한국어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일단 중단하고 '물안개의 집'이라는 소설을 먼저 썼습니다. 내 마음 속에 떠 있는 상을 잡아내어 표현하는 연습으로는 사랑 소설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뭣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아주 혼이 났지 뭡니까? 소설을 쓴다는 작업이 아주 사람 영혼을 말리고 진을 빼더군요. 제가 초보자라서 그랬겠지만 하도 감정이입을 하다보니 소설의 주인공이 임신하니까 저까지 가상임신을 해가지고 이거 실화라고 오해받는가 싶어서 가슴이 덜컥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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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다 쓰고보니 제법 제 마음에 들길래 여기저기 문학상에도 내보고 여러 출판사에 문의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어서 연재로 솔솔 풀어버렸지요. 많지는 않아도 뜨겁게 공감하는 독자들도 만났고 해서 저는 성공작이라고 자부합니다. 그 소설을 쓰면서 저와 남편 사이의 깊은 상처가 치유된 면도 큰 수확입니다. 초보자로서 글쓴이의 내면세계를 겁없이 드러낸 작품이라 이제는 누가 출판하자고 해도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책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우연이라고 믿고 있어요. 독자들이 특정 테마를 바라는 시기에 우연히 그런 책을 내면 잘 팔리는 것이고, 암만 괜찮은 책이라도 독자들이 시기적으로 외면하는 테마라면 안 팔리겠지요.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는 거거든요. 작가가 독자들의 변화하는 입맛에 다 맞출 수도 없고, 또 그러고 싶어도 그게 안 되니까 글 쓰는 사람들이 가난한 거 아니겠어요? 저는 글 쓰는 그 순간만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그 후에 잘 팔리거나 안 팔리는 건 제 덕도 탓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은 탐정소설이어요. 잔인하지 않으면서 스릴 있는... 고건물에 얽힌 글감도 많이 확보해놓았구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까지 미리 써놓았다지요. (앗, 그런데 독일어로 썼구나.) 그런데 언제 그것을 쓰게 될지는 좀 요원합니다. 요즘 제가 거의 의무감에서 숙제처럼 쓰고 있는 글들은 독일 운하에 관한 칼럼 등 시의성이 있는 글들이거든요. 사대강 공사처럼 끔찍한 사건만 막고 나면 저도 한국 일에 신경을 끄고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에는 저의 문제지요. 제가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계속 일어날 테니까요. 또 저랑 독일어로 전공서적을 같이 내기로 한 독일 노교수님이 한 분 계신데 제가 아마 그 약속도 거절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언젠가는 양단간에 결정이 나겠지요. 제가 의무감에서 쓰는 글을 더욱 정성껏 씀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던지, 아니면 어느 순간 의무감을 확 던져버리고 탐정소설을 쓰던지...

어쩌면 제가 탐정소설을 쓰더라도 한국어로 쓰게 될지도 몰라요. 제가 독일어로 소설을 쓴다면 꽤 오랜 시간을 모국어와 작별하고 독일어에 몰입해야 할 텐데 제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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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35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스위스관 설계 및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프리랜서로 문화재 실측 조사와 발굴 연구를 하고 있고, 일감이 없을 때는 글을 쓰고 살림을 하느라 허둥댄다. 성격은 극과 극이지만 이상(理想)이 맞는 독일 남자와 결혼해 20년 넘게 같이 살고 있다. ‘우리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성격은 좋으니 걱정 마세요’라며 선생님을 위로하고 딸에게 대놓고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는 대범한 엄마이지만, 댄스 학원에서 남편과 왈츠를 출 때가 가장 행복한 만년 소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프리드리히 바인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독일어),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이 있다. 


2010/03/09 14:12 2010/03/0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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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혜지 작가님을 인터뷰할 블로거를 찾습니다 :: 2010/03/09 09:45

2009년 푸른숲 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고등어를 금하노라> 임혜지 작가를 인터뷰할 블로거를 찾습니다. 자유로운 그러나 이기적이지 않은 생활을 꿈꾸고, 쿨하지만 뜨겁게 살아가는 엄마같고 언니, 누나 같은 그녀에게 인터뷰의 질문을 하고 싶은 블로거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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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기간 : 3월 8일 ~ 14일
블로거 발표 : 3월 17일  

신청 방법 : 블로거 이름, 블로그 주소, 인터뷰 질문 5가지 이상을 적어서 degool@prunsoop.co.kr 토트 메일로 보내주시고 덧글로 한줄 남겨주는 센스를 발휘해주세요~

인터뷰 방법 : 임혜지 선생님께서 블로거와 질문을 보시고 한 분을 지정하시면 그 분에게 임혜지 선생님과 메일로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여기서 블로거님의 자기 소개와 질문이 선정되는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요. 질문의 내용에는 아무 조건이 없으니 마음껏 하시면 됩니다.

참조 사항 : 블로거가 아니어도 인터뷰어로 신청을 하실 수는 있으나, 블로그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면 더 좋겠네요. 블로거의 선택은 전적으로 임혜지 선생님이 선택하십니다.


2010/03/09 09:45 2010/03/0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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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방문자 | 2010/03/11 13: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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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숲 | 2010/03/11 20:38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시내님.
      선택의 기준은 임혜지 선생님의 마음이겠죠^^
      말랑말랑하고 진솔한 질문이면 좋아하실듯해요~
      하지만 신청자가 적으면 행운의 주인공이 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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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화면] 3월 푸른숲 월페이퍼 :: 2010/03/08 17:35


푸른숲 월페이퍼 4종(클릭해서 다운받으세요)

2010/03/08 17:35 2010/03/0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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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방문자 | 2010/03/09 11: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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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임혜지 작가가 블로거들에게 :: 2010/03/08 16:26

블로거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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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블로거 독자들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평소에 한국말로 대화할 기회가 적어서 이렇게 글로나마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해요.

간략하게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지금 36년째 독일에 살고 있는 50대 여성이고요, 문화재 연구와 고건물 실측이 한동안 본업이었어요. 지금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좀 더 즐겁게 살려구요.

저는 독일인인 남편과 성년이 된 아들과 딸을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로 여기며 살고 있지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남편과 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인간들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키웠는데요. 그래서 딸이 시험 전날 밤에 춤추러 나가서 집에 안 들어와도 저희 부부는 쿨쿨 먼저 잡니다. 부모 사랑 듬뿍 받고, 넘치지는 않아도 모자라는 것도 없이 편안하게 자란 세대인데 자기들 인생을 오죽 잘 알아서 설계하겠냐고요. 옆에서 부모라고 괜히 믿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독일 부모들이 다 이런 건 아니에요. 독일에서도 저희 가정이 좀 독특한 편입니다.)

남편과 저는 극과 극으로 다른 사람이어요. 정서적으로 공통점이 없다 보니 이론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저희 부부 사이에서 유일한 소통의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척하면 삼천리일 사안을 가지고 저희는 늘 머리를 싸매며 갑론을박 했는데, 이런 점이 저희 관계의 매력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젊어서는 이런 상황이 참 한심하고 성가셨지만 이제 나이 먹으면서 보니 그렇게 다른 점으로 인해 우리는 서로에게 도전이 되어주고 서로를 키워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아직도 잘 싸우지만 이젠 절망하지는 않고 쪼금 미워하다가 금방 잊어버립니다.



임혜지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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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35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스위스관 설계 및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프리랜서로 문화재 실측 조사와 발굴 연구를 하고 있고, 일감이 없을 때는 글을 쓰고 살림을 하느라 허둥댄다. 성격은 극과 극이지만 이상(理想)이 맞는 독일 남자와 결혼해 20년 넘게 같이 살고 있다. ‘우리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성격은 좋으니 걱정 마세요’라며 선생님을 위로하고 딸에게 대놓고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는 대범한 엄마이지만, 댄스 학원에서 남편과 왈츠를 출 때가 가장 행복한 만년 소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프리드리히 바인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독일어),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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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이란? - 보기

2010/03/08 16:26 2010/03/0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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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 :: 2010/03/08 16:24

푸른숲 블로그가 오픈된지 약 1년 가량이 되네요. 2009년 3월 6일에 오픈되었으니까요. 그동안 푸른숲의 책소개, 편집자와 정원사의 이야기들, 작가들의 소개 등의 글을 포스팅했습니다. 하지만 소통의 장으로서 역할이 부족했던 점을 느끼면서 푸른숲에서 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이라는 컨셉으로 하나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내용은 책 쓰는 작가와 책 읽는 블로그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꾸며지는데요.
먼저 푸른숲 작가님의 소개와 책에 대해, 글쓰기에 대한 단상을 들려드리고요.

두번째로 작가님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관심있는 블로거님들의 신청을 받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
물론 이것은 작가님만을 여러분께 소개하는 것은 아니고요. 마찬가지로 인터뷰 신청한 블로거님들 중에서 한 분을 택해 마찬가지로 블로거, 책, 글에 대한 얘기와 작가님의 크로스 인터뷰도 진행됩니다.


약간 어렵다면 첫번 째 진행되는 작가와 블로거의 만남을 유심히 지켜보시면서 참여해주시면 됩니다.
사실 이 인터뷰가 어떻게 재밌어질지는 저도 예상할 수 없거든요~

그럼 바로 첫 주인공의 소개를 보러 가시지요~ 새로운 포스트 글로 옮깁니다. 휘리릭~

하나. 임혜지 작가와 블로거와의 만남

2010/03/08 16:24 2010/03/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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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거상 김만덕 그녀는 누구인가? :: 2010/03/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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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TV를 보다 새로운 드라마 예고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상 김만덕>.
이름은 분명 '만덕'이란 남자 이름인데, 이미연이 나와서 연기를 하더군요.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보니 김만덕은 제주의 여자들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가 살다 간 18세기에는 멀리 떨어진 한양의 사대부들도 만나보고 싶어 하던 유명인사였지요. 현대에 이르러서도 '18세기에 21세기를 살다 간 여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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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김만덕 영정>

사실 역사서에 그녀의 기록은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정조 시대 문인인 체재공의 문집 『번암집』 가운데 있는 '만덕전'의 기록이 전부죠. '만덕전'은 달랑 한 두 페이지 분량에 불과하지만, 그 기록만 되짚어 보아도 그녀가 굉장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39년(영조 15년)에 제주 양가집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 부모님을 역병으로 잃게 됩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하릴없이 기녀에게 몸을 의탁한 그녀는 양민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자라자마자 기적에 이름을 올려 관기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죠. 가무를 익혀 제주도 제일의 기생이 된 그녀. 하지만 제 기분이 아닌 남의 기분에 맞춰 웃어야만 하는 기생의 삶은 고달프기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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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녀는 스무 살 즈음 관아에 호소해 양민 신분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객주를 차려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한 그녀는 제주도 안의 물건만 사고 파는 데에 지나지 않고 배를 사들여 육지와의 교역을 시작합니다.

풍랑을 만나 침몰하는 배가 많았던 당시 상황에서 배로 하는 무역은 굉장한 모험이었죠. 하지만 과감한 투자를 실행했던 만덕은 크게 성공해 많은 돈을 벌어들입니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부모를 잃고 기생이 된 삶에서 벗어나 커다란 부자가 된 것만으로도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김만덕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실천한 '나눔'의 미덕 때문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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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부터 1794년에 이르는 3년 동안 제주에는 흉년과 태풍이 번갈아 들이닥칩니다. 들판의 양곡이 말라 죽고, 바닷물이 들어 못 먹게 되어버렸죠. 제주 주민 수천 명이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조정에서 보낸 구호미를 실은 배들은 제주로 건너오다가 풍랑을 만나 가라앉고, 육지의 도움이 끊긴 제주 주민들은 모두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전 현감과 장교, 유생들이 양곡을 풀어 백성들을 먹였지만, 턱도 없이 모자란 상황이었지요.이때 김만덕은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을 풀어 육지로 배를 띄워 양곡 5백석을 들여옵니다. 그리고 관아에 양곡을 전달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살려내지요. 김만덕이 들여온 양곡 5백석은 천명이 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김만덕이 전 재산을 풀어 기아에 허덕이는 제주 백성을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조 임금은 크게 감동하여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녀는 최초로 월해금법(제주 여자들은 육지로 나올 수 없다고 정해놓은 조선시대 법)을 깨고 한양에 발을 들인 제주 여인이 되지요.

관기 출신에, 결혼도 하지 않은 50대의 여인. 여자를 천시하던 한양의 사대부들에겐 하찮게 여겨질 출신의 그녀였지만, 한양의 모든 사람들은 당당히 정조 임금을 배알하고 의녀 반수의 벼슬까지 제수 받은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벼슬이 높은 선비들은 만덕의 덕을 기리는 시와 글을 지어 칭송했지요.

만덕을 만난 정조 임금은 그녀에게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만덕은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정조 임금은 소박하기만한 그녀의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어 그녀는 반년동안 금강산 유랑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 한양에 머물고 있던 체재공은 그녀를 인상 깊게 생각하여 그녀의 전기인 '만덕전'을 지어 전해줍니다. 조선 여인, 그것도 평생 섬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제주 여인이었던 만덕은 이렇게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대우를 받고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 여생을 마치지요.

사실,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삶은 그저 '제주도에서 성공한 여성 상인' 정도로만 치부되어 왔습니다. 그녀가 베푼 나눔의 삶과 신분과 처지를 극복해낸 의지는 주목받지 못했던 거지요. 김만덕의 주체성이 주목되기 시작하면서 그에 관련된 책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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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빛 김만덕>과 <거상 김만덕 -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예로부터 제주는 삼다도(三多島)라 불리었습니다. 돌, 바람, 그리고 여자가 많은 섬. 애초에 제주도는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섬이니 돌이 많은 건 당연한 것이고, 사면이 바다인 섬이니 바닷바람이 많은 것도 이해할 수 있는데, 어째서 여자가 많은 섬이 된 것일까요?

제주도에 유독 여자가 많은 이유는 조선시대 조정에서 정해 놓은 월해금법(越海禁法) 때문이었죠. 월해금법은 제주 여자들이 바다를 건널 수 없도록 정해놓은 법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사람이 자꾸 빠져나가는 탓에 제주의 인구가 줄어드는 걸 우려한 조정에서 취한 조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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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어려운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매인 제주 여인들은 제 나름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건널 수 없는 바다에 뛰어들어 평생 자맥질을 하며 삶을 이어가는 길을 택하거나, 항상 자냥(없을 때를 대비해 아끼고 모아 두는 것)하며 근근하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곤 했죠.

제주도는 삼다도와 더불어 ‘삼재도(三災島)’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산이 높아 물이 나지 않으니 수재(水災), 돌이 많고 토질이 박하니 한재(旱災), 사면이 큰 바다니 풍재(風災).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라는 의미지요.

이렇게 힘든 땅에 매여 살아야만 하는 운명을 극복하고 주변 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선뜻 내어 놓는 큰 덕을 베푼 거상 김만덕. 책에 이어 이번 드라마를 통해 그녀의 삶과 뜻이 ‘나눔’의 미학이 부족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해 봅니다.

2010/03/06 19:22 2010/03/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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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일기] 여지껏 숲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 2010/03/05 21:12

봄이다.
출근 준비를 하며 오늘은 날씨가 어떤가 하고 밖을 내다 본다.
어젠 비가 왔는데, 오늘은 하늘이 맑다.
마당에 쌓였던 눈이 흔적도 없이 녹고,
얼었던 흙이 녹아 촉촉하니 흙 제 본래 색을 뿜고 있다.

아, 이 스르르 녹아 편안한 느낌!

흠~
확실히 봄 흙 냄새야.
주말에 동네 공원에 가면 나뭇가지에 솟은 새싹들을 볼 수 있을테지.

신도시 주변 아파트에 살 적엔 이 맛을 몰랐다.
회사를 오가며 남들 입는 대로 철 따라 옷을 바꾸어 입었고,
그저 가로수 잎 색이 바뀌고, 떨어지는 걸 보며 계절을 느꼈다.

원래 도시에 살면 그런 거지 뭐 했다.
그러다가 건강이 좋지 않은 딸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주택으로 이사했다.

아내가 둘째를 가졌을 무렵이었다.
작지만 늘 맘에 그리던 마당이 있었고, 어린 시절 뛰놀던 그런 골목이 있었고,
숲이 울창한 공원이 가까이 있었다.

우리는 바람 많이 부는 날과 몹시 추운 날을 빼고는 늘 골목길을 걸어 공원엘 갔다.
둘째가 태어난 뒤론, 둘째를 업고 딸아이 손을 잡고서 또 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와서 걸었다.

비가 오면 비오는 날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날 대로 좋았다.
그런 날, 공원 숲엔 사람이 적어 한적했고, 공기 속에 실려오는 모든 냄새가 진하고 생생했다.

잠자던 모든 감각이 살아났다.
작년에 셋째가 태어났다. 올 봄부턴 셋째를 업고 첫째와 둘째 손을 잡고 숲으로 갈 거다.
여지껏 숲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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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이 있다.
이 아이 이름은 '코우'. 초록색 가방 안엔 도토리가 가득 들었다.
그 중에서도 코우가 가장 아끼는 도토리는 '토리'다. 도토리 엉덩이에 '토리'라고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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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를 떽떼굴 굴리며 달리기 시합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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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에도 토리와 나가 놀고, 물놀이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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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어 코우는 도토리를 줍다가 그만 토리를 잃어버린다.
해질녘까지 토리를 찾던 코우는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코우는 토리를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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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는 나뭇잎을 젖히고 낑낑대며 엉덩이를 위로 돌려보지만,코우는 끝내 토리를 찾지 못한다.
토리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떨어진다. (이 장면 꽤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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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깊은 잠에 빠졌던 토리는 봄에 새싹을 틔운다. 코우도 자라고, 토리도 꽤 커다란 도토리 나무로 자란다.
토리는 언제나 코우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며 지켜본다. 시간이 흘러 집들이 많이 생겨 코우의 집도 보이지 않고, 자동차 소리에 먹혀 코우의 발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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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코우의 발 소리가 다가온다. 어른이 된 코우다.
토리는 깜짝 놀라 도토리를 떨어뜨리고 코우는 도토리 한 톨을 주워 엉덩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코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토리를 쳐다보며 "토리?"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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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가 웃고, 토리도 웃는다.
이제 가끔씩 코우가 여기 와서 토리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끝~

가슴 뭉클한 인간과 자연의 만남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추억을 주고 싶다.

 

글. 푸른숲 디자인팀 서채홍


2010/03/05 21:12 2010/03/0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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