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사 일기] 여지껏 숲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 2010/03/05 21:12

봄이다.
출근 준비를 하며 오늘은 날씨가 어떤가 하고 밖을 내다 본다.
어젠 비가 왔는데, 오늘은 하늘이 맑다.
마당에 쌓였던 눈이 흔적도 없이 녹고,
얼었던 흙이 녹아 촉촉하니 흙 제 본래 색을 뿜고 있다.

아, 이 스르르 녹아 편안한 느낌!

흠~
확실히 봄 흙 냄새야.
주말에 동네 공원에 가면 나뭇가지에 솟은 새싹들을 볼 수 있을테지.

신도시 주변 아파트에 살 적엔 이 맛을 몰랐다.
회사를 오가며 남들 입는 대로 철 따라 옷을 바꾸어 입었고,
그저 가로수 잎 색이 바뀌고, 떨어지는 걸 보며 계절을 느꼈다.

원래 도시에 살면 그런 거지 뭐 했다.
그러다가 건강이 좋지 않은 딸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주택으로 이사했다.

아내가 둘째를 가졌을 무렵이었다.
작지만 늘 맘에 그리던 마당이 있었고, 어린 시절 뛰놀던 그런 골목이 있었고,
숲이 울창한 공원이 가까이 있었다.

우리는 바람 많이 부는 날과 몹시 추운 날을 빼고는 늘 골목길을 걸어 공원엘 갔다.
둘째가 태어난 뒤론, 둘째를 업고 딸아이 손을 잡고서 또 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와서 걸었다.

비가 오면 비오는 날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날 대로 좋았다.
그런 날, 공원 숲엔 사람이 적어 한적했고, 공기 속에 실려오는 모든 냄새가 진하고 생생했다.

잠자던 모든 감각이 살아났다.
작년에 셋째가 태어났다. 올 봄부턴 셋째를 업고 첫째와 둘째 손을 잡고 숲으로 갈 거다.
여지껏 숲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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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이 있다.
이 아이 이름은 '코우'. 초록색 가방 안엔 도토리가 가득 들었다.
그 중에서도 코우가 가장 아끼는 도토리는 '토리'다. 도토리 엉덩이에 '토리'라고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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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를 떽떼굴 굴리며 달리기 시합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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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에도 토리와 나가 놀고, 물놀이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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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어 코우는 도토리를 줍다가 그만 토리를 잃어버린다.
해질녘까지 토리를 찾던 코우는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코우는 토리를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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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는 나뭇잎을 젖히고 낑낑대며 엉덩이를 위로 돌려보지만,코우는 끝내 토리를 찾지 못한다.
토리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떨어진다. (이 장면 꽤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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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깊은 잠에 빠졌던 토리는 봄에 새싹을 틔운다. 코우도 자라고, 토리도 꽤 커다란 도토리 나무로 자란다.
토리는 언제나 코우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며 지켜본다. 시간이 흘러 집들이 많이 생겨 코우의 집도 보이지 않고, 자동차 소리에 먹혀 코우의 발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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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코우의 발 소리가 다가온다. 어른이 된 코우다.
토리는 깜짝 놀라 도토리를 떨어뜨리고 코우는 도토리 한 톨을 주워 엉덩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코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토리를 쳐다보며 "토리?"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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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가 웃고, 토리도 웃는다.
이제 가끔씩 코우가 여기 와서 토리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끝~

가슴 뭉클한 인간과 자연의 만남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추억을 주고 싶다.

 

글. 푸른숲 디자인팀 서채홍


2010/03/05 21:12 2010/03/0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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