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퍼시잭슨과 번개도둑 재밌게 보기 - 오스카의 신화 길라잡이 :: 2010/03/03 09:39
안녕하세요. 오스카입니다.
지난번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을 보고 올린 글을 읽으신 분들 가운데, 메두사 말고도 영화 안에서 등장하는 신들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영화 속에서 나온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기본적인 이야기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1.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 그리스 - 로마 신화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은 거대한 포세이돈이 바다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뭐, 주인공 퍼시 잭슨이 포세이돈의 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실제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도 포세이돈은 올림푸스 12주신(主神) 가운데 하나입니다. 거의 제우스 다음 가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요.
사실, 그리스 - 로마 신화는 좀 막장 드라마처럼 시작됩니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식을 낳으면 집어삼켜 버리는 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크로노스는 자기 아버지 우라노스를 고자로 만들어 쫓아낸 전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를 그렇게 처참하게 쫓아냈으니 자신을 닮은 자식들이 자기처럼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던 게지요. 아버지처럼 쫓겨나기 싫었던 크로노스는 그렇게 산 채로 자식을 삼켜 자기 뱃속에 가두었던 거예요.
아무튼 아버지가 자식들을 꿀꺽꿀꺽 삼키는 이 상황에서 애가 타는 것은 어머니 레아였습니다. 보다 못한 그녀는 여섯 번째 자식 제우스를 크로노스의 ‘식사’로 바쳐야 하는 상황에서 제우스를 작은 바위와 바꿔치기 합니다. 크로노스는 그 사실도 모르고 바위를 꿀꺽하고 사라지지요. 몰래 빼돌려진 제우스는 산 속에서 요정들과 함께 자라납니다. 그리고 완전히 자란 후 돌아와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자신의 다섯 형제들을 구하고 그들과 함께 아버지를 몰아내지요. 그렇게 반란의 주역이자 올림푸스의 새 주인이 된 제우스는 하늘을 담당하는 신이 됩니다. 그리고 바다는 포세이돈에게, 저승은 하데스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지요. 그리고 나머지 세명의 여신(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들은 그들과 함께 올림푸스에 머물며 각자의 영역을 관할하기 시작합니다.
2. 번개가 뭐기에, 형제끼리 으르렁대며 싸워댈까요?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에서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번개 때문에 싸우는 장면이 나와요. 포세이돈의 아들인 퍼시잭슨이 번개를 훔쳐갔다는 이유로 제우스가 따지는 거죠. 올림푸스를 차지한 제우스가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를 시켜 만들어낸 번개는 제우스의 지위를 보장하는 최강의 무기였으니까요. 그게 사라졌으니 제우스가 예민해질 수 밖에요.

<네, 제우스는 번개의 신입니다>
앞서 말했듯, 그리스 - 로마 신화의 세계관 자체가 좀 막장(;;)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몰아내는 경우가 예사로 일어나고, 신탁의 경우에도 ‘네 아들이 너를 죽일 것이다’ 류의 예언이 허다해요. 그걸 믿고 자식을 버리는 아버지도 수두룩... 부자지간도 이럴진대, 형제지간이라고 화목할까요. 번개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 질 거라 생각한 제우스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거죠.
3. 데미갓(Demigod), 너넨 뭐니?

주인공 퍼시 잭슨은 데미갓, 즉 반신(半神)입니다. 부모 중 한 쪽이 신이고, 다른 쪽인 인간인 존재죠.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신들과는 달리, 소멸되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신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인간과는 다른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 활약하는 대부분의 영웅들은 이 반신들이에요.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아킬레우스 등등. 퍼시 잭슨 역시 포세이돈의 아들답게 물을 다루는 기술을 구사하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제 눈을 즐겁게 해줬던 아나베스도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딸입니다. 원작에서는 지혜를 짜내고 전략을 세워 적을 제압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그저 칼을 들고 돌격하는 열혈소녀로 그려져 아쉬운 면이 있었어요. 아테나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더불어 전쟁을 관할하고 있기도 한 여신입니다만... 전쟁의 양면성 : '야만'과 '냉정'을 구분지었던 신화의 메타포가 반영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어요.
4. 저승 가서도 작업은 계속된다 : 사티로스와 페르세포네

퍼시 잭슨의 친구 그로버는 염소의 다리를 가진 사티로스입니다.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는 떼를 지어 다니며 산적질을 하거나 각종 사고를 치는 악마의 이미지로 등장해요. 사실 사티로스들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들입니다. ‘음주가무, 주색’이란 단어에 걸맞게 사티로스들은 춤과 음악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합니다. 영화 안에서 그로버가 항상 여자에 둘러싸인 채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시 사티로스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런 그로버를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하데스의 아내의 이름은 페르세포네입니다. 곡물과 땅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이죠. 친구들과 함께 들판으로 놀러나갔다가 그녀를 보고 반한 하데스에 의해 무려 납치(;;)를 당해 땅 속으로 끌려들어간 비운의 여인입니다. 데메테르는 딸을 돌려달라고 제우스에게 간청을 하고, 동생과 적절한(-_-;;) 타협 끝에 페르세포네는 1년의 4분의 1만 하데스와 함께 지내고 나머지 기간은 땅 위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딸과의 사이가 돈독했던 데메테르는 딸이 없는 동안엔 우울증에 걸려서 자신의 책무인 땅과 곡식을 돌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곡식이 자라는 봄, 여름, 가을과 곡식이 자라지 않는 겨울이 구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페르세포네의 귀환>, 레이턴 - 데메테르의 기쁨이 느껴지시나요?
영화에서는 그런 설정을 완전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운의 여인 페르세포네가... 남자를 유혹하는 이미지로 등장하다니요. 남편 하데스를 질색하는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영화 속에서는 거의 ‘아내의 유혹’ 수준이었거든요.

<그리스 - 로마 신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와 책>
사실 영화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 책 <메두사의 시선>을 보면서 저도 헷갈리는 부분이 많아 오랜만에 그리스 - 로마 신화를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책마다 다르게 묘사된 이야기들도 많고, 영화 안에서도 현대적으로 변용하느라 무시된 면도 많았지만, 결국 그리스 - 로마 신화는 ‘사람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신’이 등장한다는 데서 인간의 욕망과 그로인해 생겨나는 사건들을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깊게 파고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수천 년 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족 : 그나저나 우마 서먼이 연기한 메두사는 정말...!!

사족 2 : 따뜻한 댓글 작성은 잠깐이면 됩니다. 네.

음악, 소설, 역사, 드라마 애호가이자 아이폰 탐구자.
Mika, Muse, Radiohead, Green day를 좋아합니다.
최근엔 추노와 The ting tings에 빠져 있습니다.
얄밉지만 사랑스러운 언년이 같은 글을 어떻게 하면 더 아껴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