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에세이] 내비 없이 고고씽 :: 2010/01/27 13:05

내비게이션을 떼다 버렸습니다. 처음 차를 살 때 공짜로 얻은 것이니 요즘 것처럼 화면이 크지도 않고 TV가 나오지도 않는, 길 안내 기능에만 충실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 기능을 충실하게 해내지 못한 것이 이 녀석을 떼어버리게 된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처음에는 업그레이드가 잘 되지 않는 중소기업 제품이라 새로운 길을 달리면 마치 우주를 달리는 것 같은 휑한 지도를 보여줬습니다. 이건 참을 만했습니다. 나중에는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잠깐 일어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하고 주정하는 사람마냥 잠깐 불이 들어와서는 헛소리를 하고 다시 잠들기 일쑤였으니 더 이상 달고 다닐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버려도 되겠다 싶었던 것은 그 녀석 탓이 아니라 저 때문이었습니다.
내비가 정상이 아닌 덕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 강원도 철암으로 혼자 차를 몰고 갈 때였습니다. 정선에서 태백으로 가는 길이었던가 내비가 잠깐 말을 안 듣는 새, 엉뚱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잘 뻗는 새 길을 두고 구불구불 고갯길을 탄 겁니다. 차를 돌리기에도 좁고 위험한 고갯길이라, 그리고 딱히 시간이 급하지도 않는 백수 시절이었으니 고갯길을 따라 느릿느릿 올랐습니다. 아득한 고갯길 정상에서 온 길과 갈 길을 내려다보면서 어느새 눈물이 주룩 흘렀습니다.
아버지. 서른 해 가까운 고단한 서울 생활에 가진 것 없이 이 길을 넘어 ‘막장’ 생활을 하러 탄광촌으로 들어섰을 아버지, 그리고 다시 몇 해가 지나 이번에는 딸린 자식 둘과 어머니와 함께 다시 그 서울로 향하느라 이 길에 올랐을 아버지. 한 굽이 한 굽이마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단출한 세간에도 힘겹게 고갯길을 올랐을 트럭에서 우리는 무슨 기대와 어떤 작정으로 서울을 향했을까…….
그 전에야 아는 길 나서면서도 습관적으로 내비를 눌러 경로를 확인하고는 했는데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정말 모르는 곳을 갈 때 위치를 확인하는 것을 빼면 되도록 내비를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내비가 말을 듣지 않아 믿을 수 없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었지만요. 내비가 없고 보니 오히려 길을 떠날 때 목적지의 위치를 한 번 더 확인하게 됩니다. 가장 빠른 길만 단선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곳과 그곳의 위치를 일단 지도에서 확인하고 가는 여러 경로를 내 경험과 지도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니 조금 ‘즐거운 불편’이 된 셈입니다. (원래 공부를 그렇게 하라지 않던가요? 암기만 하지 말고 원리를 이해하라고.)
한때는 그런 적도 있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견강부회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시작됩니다. 주의하세요.) 아, 내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여기 가고 싶거든? 어떤 게 가장 빠른 길이야? 어떤 게 가장 안 편안한 길이야? 물었을 때 좌회전과 우회전,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것들을 모조리 알려주는 그런 것 말입니다. 그런 게 있을 수도 없지만 그런 게 있다 해도 행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가 기억납니다. 아, 중학교 때 읽었으니 동화는 아니겠네요.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이라는 쉘 실버스타인의 이야기입니다. 몸의 한쪽이 없는 동그라미는 자기에게 꼭 맞는 한쪽을 찾아 여행합니다. 온갖 여행 끝에 딱 맞는 한쪽을 마침내 찾았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동그래진 동그라미는 그동안 만났던 벌레나 꽃과 이야기를 나눌 겨를도 없이 그저 굴러만 가는 겁니다. 장기하 노래 <느리게 걷자>에도 이런 말이 나오잖아요?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사뿐히 뛰어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칠 텐데.”
고장 난 내비게이션 하나 버려놓고 참 말이 많습니다. 최근에 차에 탄 일이 없는 색시가 이 사실(공동 자산의 일방적 폐기)을 알게 되었을 때, 제가 위에 말한 것처럼 변명을 늘어놓으면 이해해줄까요? 저는 워낙에 버리기를 좋아하고, 그 친구는 워낙에 모으기를 좋아하는 친구거든요. 사실 ‘모은다’ 감각이 충만하기보다는 ‘버린다’ 감각이 퇴화되어 있는 서로 다른 인종이랍니다. 내비 없이 둘이 길을 헤매는 여행, 그 설렘을 이 친구가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이지요. (저 밥은 얻어먹고 다닐 수 있을까요?)

글. 문학교양팀 이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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