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대영 박물관을 속삭여줄게 :: 2009/11/04 15:56

대영 박물관 잉글리쉬 페이션트, 수메르 문명, 아가사 크리스티, 마르크스,
길가메시 서사시, 시누헤 이야기, 글자로 이뤄진 시, 헨리 무어, 미라의 스트립쇼,
파도 소리와 침묵 속의 노동,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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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품을 중심으로 수메르 문명, 길가메시 서사시, 미라 발굴과 미라 열풍, 엘진 마블과 그리스 항아리, 파르테논 신전에 관한 역사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울러 대영 박물관을 사랑했던 런더너(마르크스, 헨리 무어, 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의 꿈과 이상을 들려준다.   

이렇듯 대영 박물관이 내게는 초현실주의적인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은 7백만 점 유물들을 그저 박물관에 보관 중인 예술 작품으로만 본다면 대영 박물관은 우리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진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이 유물들 중 어느 하나가 나에게 젖은 담벼락이 되어주길 간절히 원한다. 우리가 매끈한 여인의 다리를 털장갑을 끼고 만지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듯 이 유물들을 감히 질문 없이 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유물을 통해 유물 너머의 어머어마한 문명과 도시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텐데 이 유물들이 CG의 테크닉이나 상상으로 가득 찬 문장이 아니고, 어떤 구체적인 존재가 꿈을 안고 믿음으로 땅에 발을 붙인 채 밥을 먹고 고민하면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떨리게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한 가지 주문을 외면서 대영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당신의 소원을 조심하라, 이루어질지도 모르니. 당신의 소원을 조심하라, 흔적을 남길지도 모르니.” 그리고 〈인디애나 존스 4〉에 나오는 크리스털 해골과 《길가메시 서사시》, 서아프리카 왕국 베닌의 흑인 예술가, 미라, 수메르의 점토판들 사이에서 곧 길을 잃고 말았다. (p. 102)

대영 박물관 최고의 자랑거리인 로제타석에서 칭송한 왕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이다. 그는 투탕카멘보다 더 어린 나이인 여섯 살에 왕이 되었다. 그는 사원에 관대했기 때문에 이집트의 신관들은 그를 칭송하는 송덕문을 잔뜩 작성했다. […]
평범한 사람들이 적어놓은 파피루스의 사연들은 대략 이런 내용들이었다고 한다. “저는 노예로 팔려가게 될까요?”, “제가 부자가 될까요?”, “제가 이혼할 운명입니까?”, “누군가 저를 죽이게 될까요?”, “제 자식들이 저와 화해할까요?” 그들은 이 파피루스를 들고 신탁을 향해 뛰는 가슴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쫑긋거리며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그들에게 신탁은 알 듯 모를 듯 은유로 가득 찬 말들을 들려줬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새벽길을 걸어 금성을 바라보면서 도시 속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러한 풍경이 내게는 다시 파피루스 속 한 장의 이집트 그림으로 남는다. 여전히 질문을 간직한 채 자신이 출발했던 곳으로 걸어 돌아가는 모습. 나 역시 비슷한 생각에 빠져 그 옆에서 맨발로 동행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걷는 내 눈앞엔 세상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 강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 강엔 아스완의 채석장에서 캐낸 화강암 오벨리스크를 실어 나르는 배가 떠 있고, 그 강으로 곧 밝아올 새벽의 요란스러운 흥정을 위해 선잠 깬 상인들과 어부들이 모여들고, 그리고 강 옆의 집에선 지상에서 착하게 살면 꼭 다시 살아 돌아온다고 믿는 선량한 사람들이 새벽잠을 자고 있는, 그런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p.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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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독서가 정혜윤의 날아다니는 여행기!
시간과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만난 런더너들,
런던을 사랑하고, 런던을 꿈꿨던
‘구식’ 런더너와 ‘2009년, 지금’ 런더너들의 이야기!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부제가 붙은 《침대와 책》과 ‘당신을 만든 책은 무엇인가’라는 독특한 주제의 인터뷰집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로 독서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정혜윤, 그의 세 번째 에세이 《언젠가 떠날 너에게 런던을 속삭여줄게》가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런던을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소 8곳에 얽힌 이야기들이 종횡무진 예측할 수 없는 흐름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중세와 현대를 넘나들면서 기상천외한 모티프로 사람과 사람, 장소와 장소를 연결시키면서 진정한 여행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2009/11/04 15:56 2009/11/0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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