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식은 좋은 대화로 끝이 난다.

- 드라마 <알래스카의 빛> 중

이 세상에는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걸어가는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이지요. 삶의 무게를 온전히 홀로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기에 사람들은 '삶은 외롭고 고달프다'라는 말에 공감하나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각자의 고민과 일거리에 빠져 살아가야만 하는 외로운 사람들에게도 가끔은 같은 시간과 같은 행위를 공유하며 마음을 나눌 기회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 기회 중 하나가 '함께 식사를 하는 것' 이지요. 미국의 유명한 요리사 제임스 비어드 (James Beard)는 '음식은 우리의 공통점이자 보편적 경험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말처럼 음식을 먹는 것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하는 행위이고, 좋은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는 것 역시 우리 모두가 겪어본 바 있는 즐거운 경험이지요.

<좋은 음식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경험이 되기 마련이죠> 
 

  남편을 여읜 이듬해에 그녀는 영혼이 다 쓸려나가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어디에 가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사방에서 꽉 붙들어줄 벽들이 필요했다. 어떤 아파트도 너무 크고 휑했다. 결국 그녀는 한 척의 배(舟)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그와 함께 살던 집을 팔았다.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친구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지지해주었다. 그런 다음 살림을 줄여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얼마 안 가 너무 넓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좀 더 작은 곳으로 옮겼고, 그러기 위해 짐을 좀 더 줄였다. 매번 그렇게 줄여나갈 때마다 슬픔도 한결 줄어드는 성싶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런 식으로 길을 치워놓으면 자기 영혼의 일부나마 다시 불러들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도 은연중에 있었다. 앎이 아니라 질긴 본능에서 솟아나는 기대였다.

- <칸지의 부엌> 중 

여기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을 맞이한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매기 맥켈로이. 요리 평론가로서 활기차게 살아가던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매기는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그녀 삶에 찾아든 비극을 홀로 감당해 내려 하지요. 집을 팔고 작은 배로 이사한 채, 업무에 관련된 사람 외에는 일체의 교류를 끊고 좁은 선실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던 그녀. 그러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그녀에게 또다른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죽은 남편에게 숨겨놓은 딸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소식!
 



남편이 중국에서 일할 때 만났다는 여자는 남편의 딸을 낳았다며 친자확인 소송을 걸어 옵니다. 중국 현행법 상 그녀의 아이가 정말로 남편의 아이라면 그 아이는 남편의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가지게 된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되면 매기는 생전 보도듣도 못한 아이와 그 가족에게 재산의 일부를 떼어줘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겁니다. 이 황당한 상황에 매기는 중국행을 결심하고, 일하던 잡지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하죠.
이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잡지사 편집장은 그녀에게 중국에 가는 김에 중국에 있는 한 요리사를 취재해 달라는 일거리를 제안합니다. 어차피 중국으로 떠날 상황, 매기는 회사 일과 개인적인 일을 동시에 처리하기로 마음 먹고 제안을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이 결정이 그녀의 삶의 전환점이 됩니다!
 


<영국의 훈남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중국에 도착한 매기는 취재를 하기 위해 요리사 샘을 찾아가지만, 그 역시 우울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자금을 지원받아 개인 레스토랑을 개업할 꿈에 부풀어 있던 그는 투자자가 계획을 취소하는 바람에 꿈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나 그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얼마 후에 치뤄질 '요리 올림픽'에 출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매기는 원래 계획되어 있던 레스토랑 취재 대신 샘의 요리 올림픽 출전 과정을 취재하기로 하지요.
 



샘은 요리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자신만의 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중국 황실의 숙수였던 할아버지의 옛 동료를 찾아가 황실 요리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가 요리를 시작한 이유는 중국에 불어닥친 문화 대혁명 때문에 미국으로 도망쳐 할아버지의 대를 잇지 못하고 요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던 아버지의 한 때문이었어요. 중국계 미국인이었던 샘은 요리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한편, 취재와는 별개로 남편의 딸이라는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위해 아이의 조부모를 설득하려 하는 매기. 샘은 그런 매기를 돕기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나고...


“당신은, 뭔가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가져볼 엄두를 못 낸 적이 있나요?”

“사랑 같은 거요. 사랑에 빠지는 거.” 그녀는 불쑥 말해놓고는, 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그렇지요.” 그는 천천히 말했다.
“너무나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만일 실패할 경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물러서는 거예요.” 그는 파를 씻어 동글동글하게 썰어나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지요.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놓치고 말리라고.”

- <칸지의 부엌> 중

<이것이 바로 칸지! - '간지'가 아니에요>

'칸지'는 밥알이 씹히지 않을 정도로 푹 끓인 죽에 여러가지 토핑을 얹어 먹는 중국식 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갓 익힌 쌀의 냄새가 나는 이 요리를 나누어 먹으며 매기와 샘은 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요.
요리 취재를 통해 인연을 맺은 매기와 샘. 과연 그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죽은 남편의 친자라 주장하는 아이는 과연 정말로 매기 남편의 친 자식이었을까요?
요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하는 샘은 요리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요?
요리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알아가고 그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칸지의 부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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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똑똑해지면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많은 사람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 언론을 접하므로, 스승이 훌륭할수록 제자 역시 훌륭해지는 법이다.

- 워렌 버핏

세계적인 투자가 워렌 버핏의 말처럼, 기자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학교 밖의 스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네 삶의 범주가 동네에서 나라로, 다시 세계로 급작스럽게 넓어지면서부터 기자라는 직업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지요.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힘은, 많은 사람들이 그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니까요.

 

<비운의 예언자 카산드라>


기자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실을 알아냈다 해도 그것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지요.
세상에는 '거짓'과 '진실'이 섞여 있고, 사람들은 그 둘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의심'이라는 것을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는 빼어난 미모를 지닌 탓에 아폴론 신의 유혹을 받았는데요. 아폴론은 그녀의 사랑을 얻는 대신 그녀에게 앞 일을 내다볼 수 있는 예지 능력을 선물로 줍니다. 그러나 애초에 아폴론을 사랑하지 않았던 카산드라는 그 능력을 얻고 난 후에 아폴론을 떠나고, 이미 준 능력을 거두어 들일 수 없었던 아폴론은 그녀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그녀가 하는 올바른 예언을 아무도 믿지 않게 되는' 저주 말이죠.
이 저주로 인해 카산드라는 고국인 트로이가 한창 방어전을 벌이고 있을 때, 적국의 계략인 '트로이 목마'를 간파하고도 트로이의 멸망을 막지 못합니다. 목마가 성 안으로 들어오면 트로이가 불타오를 거라는 예언을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파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결국 트로이는 멸망하고 그녀 역시 적국 장수의 전리품이 되어 비참한 생활을 거듭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카산드라'는 서양에서 힘없는 예언자, 개혁가를 빗대어 부르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지요.

무기 없는 예언자는 멸망한다.

- 마키아벨리 


카산드라의 이야기와 마키아벨리의 말은 예언자 -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달하는 사람 - 에게는 그들의 말이 '거짓'으로 판명받지 않도록 사람들을 휘어잡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짓'에 휘둘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팩트'를 받아들이지 못하니까요.
<나는 꼼수다>는 그런 면에 있어서 이상한 '무기'를 가진 방송이었습니다. 기자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신뢰할 만한 취재원'이나 거대 언론이라는 '이름값'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오히려 '~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라며 자신들이 이야기한 '팩트'를 부정하는 - 묘한 방송이었죠.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믿지 말라고 덧붙이며 장난처럼 내뱉는 '팩트'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위엄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소위 '가담항설'이나 주워섬길법한 태도로 낄낄대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유력 언론에서 보도하는 기사보다 더 신뢰를 얻기에 이르렀어요.



나는 내 얘기하는 걸 싫어한다. 내 얘기 하는 게 부끄럽고 인생이 상업적이지 않기 때문에 나를 포장하는 게 어렵다. 진정성이 있으면 된다고 하는데 내 기사에는 진정성이 있을지언정 나는 그것도 잘 모르겠다.

  십 년 전만 해도 나는 엄청난 개차반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말도 못했다. 학교도 안 가고 친구들하고 많이 놀았다. 경찰서에 가서 잡혀온 애들을 보고 있자면 나보다 죄질이 약한데 왔네 싶은 애들도 수두룩했다. 또 그때는 돈만 생기면 다 사고 쓰고 놀았다. ‘신념 있는 기자가 되겠다이런 건 단 한 번도 생각 안 했다. 앞에서 돌 던지고 있는데 다른 애들이 다 뒤로 빠져서 혼자 돌을 던지게 된 것뿐이다. 사장한테 잘 보이려고, 대기업한테 잘 보이려고, 돈 잘 벌려고, 출세하려고 하면서 하나둘 빠지는데 분위기 파악을 못해서 혼자 서 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 사람이 돈에서 조금 벗어나면, 자유롭다. 온갖 비리가 바로 돈을 더 많이 먹고 싶어서 벌이는 짓들이다. 못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욕심이 욕심을 부르는 거다. 나는 돈 많은 것보다 저놈은 멋있는 구석이 있어, 그 한마디면 된다.

<주기자> 중 

'나꼼수' 4인방 중, 유일한 정통 '기자'인 주진우가 그들 가운데 가장 늦게 책을 냈습니다.
'나는 내 얘기 하는 걸 싫어한다'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의 책 속엔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냥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세상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를 추적하는 것을 '삶의 일부'로 삼는 기자니까요. 신정아 사건, 장자연 사건 등 - 이미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서 멀어진 사건들이 그것들을 추적했던 기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다가왔는지, 그리고 '기자' 주진우이기 이전에 '인간' 주진우로서 그는 어떻게 그 '팩트'들을 대했었는지. <나는 꼼수다>에서 장난처럼 내뱉던 '팩트'들은 차분하면서도 거침없는 면을 지닌 그의 글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 특기인 반항을 살려 기자가 돼서도 나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철들지도 않았다. 기자 초년병 시절 경찰서에서 조폭의 머리에 한 방 먹인 적도 있었다. 서울시경 폭력계에 갔는데 30대 조폭이 눈빛부터 건방졌다. 상계동 쪽 조직의 중간 보스였는데 무허가 식당을 하는 할머니를 때린 놈이었다. 깡패는 점심시간에 5만 원쯤 하는 일식집 도시락을 시켜 먹었다. 형사랑 설렁탕을 먹다가 내가 바꿔먹자고 그놈 도시락을 뺐었다. “, 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내가 머리를 주먹으로 갈겨 버렸다. 형사들이 주 기자님 이러시면 안 돼요라고 말리더니, 뒤에서는 칭찬했다.

이제는 주먹 쥐고 몸으로 싸우는 일은 없다. 하지만 나는 힘 센 놈들과 계속 싸운다. 권력을 휘두르고 부패를 기반으로 저희들끼리 나눠먹는 걸 보면 총을 쏘고 싶은 심정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선생은 내가 언젠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힘 있는 자들의 비리를 못 견디고 가혹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러고 싶다.

나는, 내 기사는 편파적이다. 항상 약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본다.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에게는 현행법과 더불어 정서법을 들이대고 기준점이 넘으면 가차 없이 돌팔매질을 한다. 나는 언론의 중립이라고 자위하면서 음흉한 속을 감추는 것보다 편파적인 게 백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데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강자 편을 들라는 말 아닌가. 똑같은 룰로 링에서 싸우면 당연히 힘 센 놈이 이기지 않나. 그 룰이라는 걸 힘 센 놈들이 만들지 않았나. 게다가 기자들은 힘 센 놈들 이야기만 듣는 게 현실 아닌가. 이게 공정한가. 이게 정의인가.

나는 중립, 균형을 찾기보다 편파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겠다. 내가 이런다고 약자들이 이기지도 못한다.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힘을 함부로 쓰는 자들에게 짱돌을 계속 던질 것이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쫓아가서 욕이라도 할 것이다. 그래서 깨지고 쓰러지더라도 말이다. 나는 17살 주진우다

- <주기자> 서문 중 


세상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 세상을 달라지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자신의 기사를 '편파적'이라고 정의하는 그의 글에는 '그럴 분이 아닙니다'라며 자기네들이 이야기한 팩트를 부정했던 <나꼼수> 이상의 힘이 있습니다. <나꼼수>가 가진 '무기'가 '해학'과 '자유분방함'이었다면, 기자 주진우가 가지는 힘은 주진우가 '기자'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팩트'에 접근한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인간 주진우가 털어놓는 힘있는 고백, <주기자>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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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주진우 (푸른숲(도서출판)(주),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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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나는꼼수다,봉주12회,조선일보,주기자,김어준,정봉주,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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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서 가장 반항적이고 편파적인(약자에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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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펙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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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지정 우애이기 (兄弟之情 友愛而己) : '형제간의 정은 서로 우애하는 것이다'

<사자소학(四字小學)>

형제, 혹은 자매란 얄밉고 귀찮은 존재이면서도 누구보다도 듬직하고 소중한 존재이기도 한 미스테리한 관계입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같은 집에서 살며 부대끼는 '나이 비슷한' 존재이기에 같이 즐거운 시간을 나눌 기회도, 그만큼 서로 싸우고 다툴 여지도 많은 것이 형제지간일텐데요.
그래서인지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중에서 이 형제간의 '우애'나 '다툼'을 다룬 것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유명한 성경 속 '카인과 아벨'에서부터 우리나라의 '흥부 놀부', '의 좋은 형제', '장화홍련전' 등이 대표적인 형제자매를 다룬 이야기인데요.


<서로 결말이 극과 극인 두 형제 이야기 - '카인과 아벨'과 '의 좋은 형제'> 
 

신이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제사와 공물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질투심을 품고 동생을 돌로 쳐서 죽인 카인. 서로의 살림살이를 걱정해 양식을 각자 집으로 몰래 날라주다 중간에 마주쳐 서로의 우애를 확인하는 의 좋은 형제. 그야말로 극과 극인 형제 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이좋아(?) 보이는 아기 형제>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기 아이들이 의좋은 형제자매가 되어 사이좋게 지내길 바랄 텐데요. 그러나 현실에서 동화 속 이야기처럼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는 '의 좋은 형제'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매일같이 투닥대고 그러다 싸우고 울고, 가끔은 자기가 엄마 아빠에게 소외되었다 생각해서 삐지기도 하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지만, 정말로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 정답고 조용하게 지내기란 특히나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 형은 엄마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검도를 배우러 다녀요.
‘배우기 싫다는 형 대신 나나 배우게 할 것이지. 나한테는 수학 학원만 다니라 하고…….’
“민재야, 뭐 하니? 빨랑 오잖고.”
“나, 이 아프다고 했잖아.”
“맛있는 거 형하고 엄마가 다 먹는다.”
일부러 나 약 오르라고 그런다는 거 나도 알아요. 
‘형이나 실컷 먹으라지. 이따 아빠 오시면 다 일러 버릴 거니까, 뭐. 내가 저녁을 굶으면 마음이 아프겠지?’
그런데 엄마는 내가 밥을 굶는다는데 와 보지도 않아요. 보나마나 형에게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신경 쓰기 바쁠 테니까 나 같은 건 이가 아프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을 거예요. ...

<우리 집엔 형만 있고 나는 없다> 중에서

제목에서부터 아이의 불만이 가득 드러나는 <우리 집엔 형만 있고 나는 없다>는 형만 아끼는 엄마와 그 때문에 속이 타는 동생의 마음이 잘 그려진 동화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이야기가 철저히 아이의 시선에서 엄마와 형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이는 처음엔 엄마가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고 형만 챙기는 것 같아 원망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엄마와 형의 모든 행동을 불만스럽게 바라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점차 엄마가 왜 형을 그렇게 챙기는지 이유를 알게 되고 결국 엄마는 두 형제를 모두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 “민재가 잔정도 많고 속도 깊어요. 몸이 약한 형 때문에 늘 뒷전이라도 제 일 제가 알아서 하니까 공부 빼고는 나무랄 게 없어요.”
‘와우!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지금까지 신경질 낸 것 용서하시와요. 네!’
엄마가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우리 집엔 형만 있고 나는 없다> 중에서

이 이야기에서는 동생이 형을 질투하지만, 실제로는 형이 나중에 태어난 동생을 질투하는 경우가 더 많지요. 어느정도 자라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게된 자신보다는 아무래도 도움의 손길이 더 필요한 동생에게 부모님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할 테니까요. 자기가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아이는 어리광을 부리고, 잘 할 수 있는 것도 못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동생을 때리고 괴롭히는 등의 행동을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냥 아이를 탓할 수 없는 것이, 처음 동생을 맞이한 아이의 스트레스는 '바람을 피운 남편을 본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열배'라는 속설도 있을 정도라니까요.

 

그래, 그래. 나도 다 알아.
언니가 얼마나 얄미운지. 동생은 또 어떻고. 아주 미워 죽겠지.
나도 그랬어. 그래서 세상에서 싹싹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지금은 언니랑 내 동생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는걸. 오빠도 그렇고.

<형제는 즐거워> 서문 



가족 동화집 <형제는 즐거워> 속에서도 아웅다웅 다투고 화해하며 살아가는 형제 자매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늦둥이 남동생 때문에 골치를 썩히다 못해 '동생을 내다 버리자'고 쑥덕대는 두 자매, 어린 동생과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갔다가 동생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했던 언니의 사연, 아빠와 함께 부대자루 눈썰매를 타며 추억을 나누는 형제의 이야기까지... 일상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우리네 가족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 안내 방송이 나갔지만 소랑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일랑이는 한숨만 나왔습니다.
이러다가 진짜 소랑이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생각만 해도 눈이 따가웠습니다.
도우미 언니가 다시 한 번 안내 방송을 해 줄 때였습니다.
"야, 너 어디 갔었어?"
소랑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어떤 아줌마랑 걸어왔습니다.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지하 매장에 갔었어..."
일랑이와 상미는 소랑이를 막 혼냈습니다. 마치 엄마가 된 것 같았습니다.
"자,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언니, 쇼핑 더 안 해? 하나도 안 샀잖아."
"뭐, 살 것도 없네."
일랑이는 엄마처럼 말했습니다.
"그래, 쓸데없는 물건만 있어."
상미도 엄마처럼 대답했습니다.

'뭐 살까?' - <형제는 즐거워> 중 

가장 가깝고 친밀하면서도 그만큼 쑥스러워 속 마음을 터놓고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이 가족, 그 중에서도 형제자매일텐데요. 항상 투닥대고 싸우면서도 옆에 없으면 허전하고 심심한 것은 우리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형제자매이기 때문일 겁니다. '형제자매는 수족과 같다'라는 옛 말처럼, 소중한 형제지간의 우애. 따뜻한 형제 이야기를 다룬 두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형제는즐거워
카테고리 어린이 > 초등1~6학년공통
지은이 이미옥 (푸른숲,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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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생각'>

인간을 흔히들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본능'을 가진 육체를 지녔다는 점에서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지만, 그것을 통제하는 '이성'과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돌아보게 해주는 '생각'을 가졌다는 점에서 인간은 만물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데요.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 지구 상에 어마어마한 것들을 남겨 놓았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물론, 철학과 사상, 미술, 문학과 같은 예술. 수많은 건축물들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이 땅 위에 살다 간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생각'의 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어떠한 동물도 인류가 지구 위에 남겨 놓은 만큼의 흔적 - 그것들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요 - 을 남기지 못했다는 점에서 인류만이 가진 '생각'의 힘은 과히 위대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자신들만이 가진 이 '생각의 힘'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고, IQ, EQ와 같이 그러한 생각의 힘을 객관화하는 수치들이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계산하고 기억하는 능력보다 '창의성'을 강조하는 시류에 맞추어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해내는 기술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요.
비록 '인터넷'이라는 어마어마한 정보를 담은 공간을 컴퓨터를 켜면 드나들 수 있게 된 요즘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람들은 '지식의 보고'하면 '책'을 떠올립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점을 둘러보면 이 '생각하는 법'에 대한 책들이 수없이 많이 보여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생각,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한 생각, 공부를 잘하기 위한 생각... 각기 목적은 다르지만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방법을 담은 수많은 책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꼽아 보았습니다.


<작가 스티븐 킹>

<캐리>, <샤이닝>, <미저리>, <미스트>, <쇼생크 탈출> 등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들을 집필한 작가 스티븐 킹. 그는 '소설을 쓰는 것은 노동이다'라고 잘라 말한 바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한 생각을 하는 것은 마냥 즐거운 일이 아닌, 하나의 '일'과 마찬가지로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는 거죠. '신이 일을 할 재능을 주었는데 왜 그걸 하지 않는가?'라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 그는 수많은 걸작들을 써내려갔고, 지금도 써내고 있는 중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만큼 흥미진진하고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어 스릴이 넘치지요. 그런 '창의적'인 글을 쓰는 그만의 '생각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 이 자리에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이 세상에 '아이디어 창고'나 '소설의 보고'나 '베스트셀러가 묻힌 보물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의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허공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소설가를 찾아오는 듯 하다. 전에는 아무 상관도 없던 두 가지 일이 합쳐지면서 전혀 새롱누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가가 해야 할 일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중에서 

유혹하는글쓰기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지은이 스티븐 킹 (김영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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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과 정재승>


과학자 정재승과 인문학자 진중권은 요즘 세상을 지배하는 '핫 아이템'을 바라보며 그것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원리를 '생각'에서 찾습니다. 스타벅스, 스티브 잡스, 구글, 몰래카메라, 레고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한 채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창의적인 생각' 덕분이라는 거죠.
우리가 단순히 맘에 들어 선택하고 소비한 문화 상품들이 결국 유사 상품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선택되도록 철저하게 계산된 것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물건들은 하나같이 '창의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를 얘기할 때 빼먹을 수 없는 것이 맥월드의 기조연설이다.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철저하게 연극적으로 조직된다. 이 공연은 물론 반복적인 리허설과 고된 연습을 통해 완성된다. 스크린 앞에서 이루어지는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일종의 행위예술이다. 결정적인 얘기를 꺼내기 전에는 무대 옆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시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프레젠테이션이 끝날 때쯤에는 꼭 "아, 한 가지 더"라고 말하며 보너스를 얹어준다. 서류 봉투에서 슬며시 노트북을 꺼내 드는 제스처는 당연히 노트북 두께를 숫자로 말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인상을 준다.

<정재승 + 진중권 크로스> 중에서

크로스무한상상력을위한생각의합계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지은이 정재승 (웅진지식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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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가 작가적인 관점에서 다른 사람을 사로잡을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재승 + 진중권 크로스>는 지금 존재하는 아이템에서 그것이 만들어진 생각의 과정을 되짚어 나가며 이미 대세가 된 '창의적인 생각'들을 정리해나가는 책이었다면, 지금 소개할 <생각의 완성>은 훈련을 통해 누구나 '훌륭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생각 훈련법'을 알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고 훈련 전문가인 빈센트 라이언 루기에로 교수는 '생각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강조하며 이 책을 통해 주변의 것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이 가진 문제를 정의하며, 글로 표현하고 끊임없이 다듬어 훌륭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주변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하나의 생각이 '완성'되는 과정에 대해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산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을지, 밥을 먹고 씻을지에서 출근할 때 뭘 타고 갈지, 저녁에는 누구와 뭘 먹을지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것은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한쪽에서는 오히려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이러한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생각이란 운전을 하면서 운전대를 조종하듯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의도적인 정신활동’이기 때문이다. 아무 목적 없이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일상의 정신 활동은, 따라서 생각이라기보다 망상에 가깝다...

...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고 모두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운전을 하는 중에도 운전자는 지금 브레이크를 밟을지, 속도를 높일지, 차선을 변경할지, 직진을 할지 유턴을 할지 고민하면서 차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저자는 생각을 운전에 비유하면서,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사라지는 다양한 정신 활동을 의식으로 제어하고 확장시키는 과정이 바로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도로 위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려 정해진 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가는 사람이 훌륭한 운전자이듯,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빨리 정신을 모으고, 문제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답을 찾는 사람이 훌륭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생각의 완성> 중에서


생각의완성창의적이고비판적인생각의바이블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지은이 빈센트 라이언 루기에로 (푸른숲,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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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찾아내는 방법이 아니라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소설가.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문화 상품들이 모두 '생각 덩어리'라는 것을 파헤치는 과학자와 인문학자.
'생각한다는 것'과 '망상하는 것'을 구분하고 의도적인 정신활동인 '생각'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 사고 훈련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생각'이라는 단어는 같지만 각각의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생각'들이 서로 각기 다른 측면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그만큼 인간이 가진 '생각'이라는 것이 다양한 방면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겠네요.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로, 창의적인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인류를 지탱해오고 발전하게 이끌어준 이 '생각'이라는 것의 힘. '생각하는 법'에 대해 다룬 책들을 읽으며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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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진 당시 NHK 리포터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일본 관동지방 북동쪽 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진도 9.0, 일본의 근대지진관측 사상 가장 강력했던 이 지진은 수많은 여진과 쓰나미를 불러오며 일본 동부 해안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요. 미국 지질연구소에서는 이 지진으로 일본 열도 전체가 태평약 쪽으로 2.4m 이동했다고 발표했고, NASA에서는 이 지진으로 인해 지구의 자전이 1000만분의 16초 빨라졌다고 주장했지요. 새삼 이 지진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지진이 잦은 곳이었고, 그때 지진이 일어난 센다이 앞바다는 7.5 규모의 강진이 30년 주기로 일어나는 곳이어서 그에 대한 대비도 철저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0년 간 단 5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던 진도 9.0의 대지진은 이러한 대비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많은 것을 앗아갔지요. 지진 후 1년이 지난 지금 사망자 15,854명, 실종자 3,272명이라는 인명피해와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진이 남기고 간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지요.




지진이 일본을 덮쳤을 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6기는 지진을 감지하고 일제히 가동을 멈췄습니다. 그 때문에 원전 자체의 전기 생산이 중단되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송전망마저도 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터라 원자로를 냉각하는 냉각 시스템이 가동될 수 없게 되었지요. 원자로는 가동이 중단되어도 기존의 반응로에 남아 있었던 물질들이 계속 반응해 열을 발생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냉각이 필요한데, 지진 후에 들이친 쓰나미가 비상 발전시설마저 침수시켜 결국 원전 1호기의 연료봉이 외부로 노출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엔 수소가스 폭발, 멜트 다운 등의 대규모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고, 결국 원자로 안에 있던 방사능 물질들이 외부로 누출되고 맙니다.
세계 각지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쏟아졌고, 후쿠시마 인근의 채소류, 수산물은 판매가 금지되었고,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일본산 식품에 대해 잠정적으로 수입을 보류하기에 이르르지요.

매우 유감이지만 일본은 가난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 로렌스 서머즈 
원전 피해로 인한 보상금과 후쿠시마 주변의 농수산업의 괴멸, 관광사업의 몰락, 원전 폐쇄와 주변 지역 청소에 드는 비용, 무엇보다도 사건 은폐에 급급했던 일본 정부의 태도로 인한 일본의 국가 이미지 실추 등은 버블 붕괴 이후 침체기에 빠져있던 일본의 경제에 치명타를 주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1986년에 일어났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지금까지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역시 장기적으로 일본을 옥죄어 올 사고로 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정부가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아 복구를 포기한 지역을 선정할 정도니 말 다했죠.

<1986년, 체르노빌 폭발 사고 직후 촬영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지난 1월엔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해 원전 4호기마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태위태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510개의 일본 기업이 도산했으며,
후쿠시마 고리야마 시민들이 신청한 어린이 14명에 대한 피난 신청이 기각되는 일이 있었지요.
올해 3월 11일에는 1주년 추도식이 곳곳에서 열렸고, 그와 동시에 원전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합니다.

 <대지진 1주년 정부 추도식에 참석한 일왕 부부>

최근 우리나라 청년이 대지진 1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일본이 지진으로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올리고, 이에 발끈한 일본인 청년이 '표절의 나라 한국, 망해라'는 내용으로 저주 동영상을 올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다행히도 양국의 의식있는 네티즌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고 의식없는 두 사람의 행동을 비난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만, 보고 있는 내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남아공의 국부라 불리우는 넬슨 만델라>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무단 방류한 일본에 대해 각국이 일본 농산물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 문득 떠오른 이야기가 있었어요.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라카공화국의 인종차별에 대항하여 감옥을 드나들 때, 유럽에서 그를 지원하고 남아공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남아공 농작물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었다는 이야기였지요.

... 유럽으로 농작물을 수출하는 것이 남아공의 중요한 외화 벌이였으므로 그 당시 유럽에서는 여러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남아공 농작물에 대한 보이콧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국가적인 선동이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유럽에서는 국민들 개개인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도 '남아공 과일을 사지 말자'는 스티커를 냉장고에 붙여놓고 장을 볼 때마다 원산지를 꼭 확인하곤 했다...

... 나중에 남아공에서 인종차별법이 철폐되고 흑백 차별 없이 자유 총선거를 치러 정치적으로나마 인종차별이 없어지는 일에 외국의 경제적 압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괜히 마음이 흐뭇했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정치적으로 종결시키는 데 내 힘도 한몫한 게 아닐까 해서.

<고등어를 금하노라> 중  


<이번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에 쓸려갔다가 3일만에 구조된 생후 4개월 된 여자아이>

사고 후 1년. 원자로는 냉온정지상태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정작 원자로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파악되고 있지 않고, 일본은 여전히 방사능에 오염된 위험 구역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후쿠시마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등, 사고로 인한 여파는 여전합니다.
이번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난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모습은 세계 각국의 빈축을 샀지만, 재난을 극복하려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염된 고향에 돌아올 희망을 만들기 위해 한 시간에 1000엔의 급료를 받으며 목숨을 걸고 원전 복구 현장에서 뛰었던 노동자들,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보이지도 않는 유독 방사능이 떠돌고 있는 지역으로 달려갔던 구조요원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막대한 성금을 보내온 수많은 사람들과 커다란 재난에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NHK 리포터가 절망에 차 부르짖었던 것처럼 '자연이 주는 재앙'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한 '사람'의 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지요.

... 세상은 앞에서 활약하는 주연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배경을 이루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주연이 아님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이 '배경'의 위력을 항상 생각하며 '좋은 배경'이 되겠다는 뜻으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씨를 뿌리며 산느 일에 자부심을 가지기로 했다. 티끌인 나에게 태산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고등어를 금하노라> 중 

우리나라는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유지해 온 나라입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이명처럼 애증이 뒤섞인 관계인 양국이지만, 일본이 커다란 재난을 맞아 흔들리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들의 '좋은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마냥 성금을 보내는 것이 아닌, 그렇다 해서 마냥 일본을 비난하는 것도 아닌 - 그들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 말하고,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와주는 - 무엇보다도 그들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좋은 배경' 말이죠. 독일에 유학간 한 유학생이 벌인 남아공산 농산물 보이콧 운동이 수십년간 남아공을 지배해 온 인종차별법을 폐지시켰던 것처럼 말예요.

고등어를금하노라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임혜지 (푸른숲,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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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지진.스나미.후쿠시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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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중국을 읽다> 책표지에 웃는 그림을 보며 따라 웃게 되는 나를 발견 ^^ 
모두다 그렇지 않으신지?
그래서 웨민쥔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 했습니다.



중국 현대미술 작가 <Yue MInjun 웨민쥔,岳敏君>
1962 헤이룽장성(黑龙江省) 다칭(大庆) 출생
1985 허베이 사범대학 회화과 졸업
2005 <조각 설치 세계 박람회>, 리도, 베니스, 이태리
2004 <노 유턴: 중국 현대 미술>, 관도 미술관, 타이완, 중국
2003 CP 열린 비엔날레. 인도네시아 국제 갤러리,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2002 <중국 현대 미술전: 붉은 땅의 나라>, 광주 미술관, 한국
2002 <우리의 친구들>, 바우하우스 미술관, 바이마르, 독일
2001 <5명의 중국 아방가르드 작가>,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한국
1999 48회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이탈리아

웨민쥔은 중국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야기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자신의 얼굴로 표현한다고...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리며 웃고 있는 그의 작품속 인물들은 유머러스하기 보다는 비판적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네요.
 

2007년 10월 12일 런던 소더비에서 590만불에 낙찰된 웨민쥔(45세)의 '처형'.


 파리 아트큐리알 박물관 학예실의 중국미술 비평가인 Pia Copper 는 한 잡지 인터뷰에서
"어렵고 슬픈 현실 앞에서 명랑하게 웃는 그림 속 남자의 모습은 스스로를 조롱하는 내적슬픔이다." 
라고 했답니다.

설명을 듣고 나서 그림을 찬찬히 보다 보니 그의 그림에서 슬픔이 느껴지네요.


1 ‘Dog-spring culture’(2008). 캔버스에 유채. 300*400㎝
2 쑹좡 아틀리에 내부 모습.
3 쑹좡 아틀리에 마당에 설치된 조각상.
4 ‘Isolated Island’(2010), 캔버스에 유채, 300*300㎝

 


 

 

 

 

 

 

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체사레 베카리아>

이탈리아의 형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C. B. Beccaria)가 이렇게 말했지요.
"역사가 없는 나라의 국민은 행복하다"고.
역사는 언제나 그것을 돌아보는 이들에게 쓰라린 반성과 함께 교훈을 주지요. 베카리아는 되돌아볼 역사가 없는 이들에겐 어리석은 과오도, 어두운 과거도, 그로인한 파국도 존재하지 않기에 그만큼 행복할 수 있다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자신들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역사도 시작되었기에 실제로 '역사가 없는 나라'가 존재하는 일은 없겠지요. 그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억지로 그들의 행적을 잊어버리려 노력하지 않는 한 말이죠.


<기록말살형을 당한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사실,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애써 그 시대의 일을 잊어버리려 노력한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에는 기록말살형(Damnatio Memoriae)이라는 게 있어서, 아주 끔찍할만큼 실정을 저지른 황제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리는 일이 벌어지곤 했어요. 그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 공문서는 불태워지고, 동전에 새겨진 얼굴은 깎아 없애버리고, 애써 만든 조각상들은 부숴버리는 - 후세의 사람들이 그에 대한 기록을 찾으려 해도 다시는 찾지 못할 정도로 '역사'를 삭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거죠.


<조선의 역사가 말소되었다는 전제로 시작되는 영화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우리나라에서도 '역사'를 말소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적이 있었죠. 바로 일제 강점기 시대입니다. 소위 '민족 말살 통치'가 시작된 1931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일제는 '내선일체', 즉 조선과 일본을 한 나라로 규정하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모조리 부정하는 정책을 시행하지요. 한국말은 금지되고, 한국 이름을 억지로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살정책이란 게 굉장히 지독하게 이루어진 탓에 국내외 독립운동은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암암리에 이루어지던 조선 역사 및 우리말 교육도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합니다. 그리하여 1945년 광복이 되었을 때, 20대 이상의 어른들은 모두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는데, 민족 말살 통치 기간에 태어난 어린아이들은 일본과 우리나라를 한 나라로 여기고 왜 일본이 패망했는데 만세를 부르는지 어리둥절해 했다고 하네요. 위에 예시로 든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해방이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조선이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남았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영화인데요. 지독했던 민족 말살 통치에 관한 기록을 보면 정말 그럴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섬찟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조선의 역사'를 잃어버린 우리 민족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저 새(참새)는 해로운 새다. - 만화 '창천항로' 중>

우리와 이웃한 중국에도 소위 '잊혀진 역사'가 존재합니다. 바로 1960년 전후에 일어난 '대약진 운동' 시기죠. 당시 소련이 미국의 경제력을 능가하겠다는 선언을 하자 이에 질 수 없었던 중국 공산당의 수장 마오쩌둥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이 '대약진 운동'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아주 참담한 실패로 끝나게 되지요.

마오는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운동을 추진했다. 소련과의 동맹 관계에서 긴장이 느껴지기 시작한 때, 마오는 농촌에서 공업을 발전시키고 관개공사 같은 대규모 작업을 계획적으로 실시하여 각 지방을 일종의 자급자족 지역으로 만들고자 했다...

... 마오가 참새를 보고 해로운 새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전국에 참새잡이 광풍이 불기도 했다. 평균 5천 가구를 모아놓은 거대 집단 '인민공사'는 더욱더 노동집약적이고 합리적인 생산 조직을 자처했다...

... 사실상 대약진 운동은 금세 참담한 실패로 드러났다. 공장에서나 농업협동조합에서나 간부들은 자꾸만 늘어나는 생산 할당량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중앙 정부는 제대로 경제학적 계산도 하지 않고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목표를 잡았던 것이다. 새로운 결정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즉시 제거당했다. 당시 공산당 간부의 10퍼센트가 축출당했고, 농촌에서는 당 지부 간부의 절반 이상이 교체되었다. 신장 같은 소수민족 지역은 특히 심한 탄압을 받았고 이미 넘쳐나는 노동교양소들도 수만 명을 더 받아야만 했다.

... 전문가들은 1959~1962년 사이에 중국에서 1천4백만 명에서 3천만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정치적 선택의 유토피아는 용납되지 않았다. 1962년 중국공산당 제8기 9중전회 때 류사오치가 주도한 노동분과 회의에서 대약진운동의 실패는 70퍼센트가 인재(人災), 30퍼센트는 천재(天災)라고 결론을 내렸다. 1979년에 당은 대약진운동의 참사를 인정했지만 상당 부분 자연재해, 특히 가뭄을 실패의 원인으로 돌렸다. 당시에 중국이 가뭄에 시달렸떤 것은 사실이지만 잘못된 관개사업 계획도 한몫을 했다. 오늘날까지도 중국인들은 대약진운동의 역사를 이런 식으로만 알고 있다. 지역 간 교류가 거의 없고 공산당의 선전이 유일한 정보통이었으며 어떤 통계 자료도 발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을 읽다> 중


<앤디 워홀의 마오쩌둥>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실패 이후에도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다시한번 중국을 혼란으로 몰아갑니다.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에서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되고, 사회기반은 무너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죠. 마오는 그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7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중국인들은 그를 지금의 중화민국이 있게 한 신화적인 인물로 기억합니다. 그가 저지른 실정들이 모두 왜곡되고 삭제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죠.


<지금도 보존되어 있는 마오쩌둥의 시신>
 

중국은 참으로 신기한 나라입니다. 경제 규모 세계 2위. 외환보유고 세계 1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세계 2위의 대국이면서 1인당 GDP는 90위에 그치는 개발도상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4번째로 많은 나라이면서도 하루 생활비 1달러 미만의 절대 빈곤층이 2억명이나 있는 나라. 버젓하게 공산당이 존재하면서도 자본의 힘이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 소위 '대국 시리즈'라 불리는 유머 게시물을 돌려보며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기엔 중국이라는 나라는 너무도 크게, 그리고 너무도 가까이 우리의 곁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중국, 그들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중국. 이제 다시 한번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돌아볼 때가 아닐까요?

중국을읽다1980-2010세계와대륙을뒤흔든핵심사건170장면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카롤린 퓌엘 (푸른숲,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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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떱뎁까?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밭에는 당추(唐추)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
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니같이 어려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시아버니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동세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족새요. 
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자식 하난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 
...

민요 <시집살이 노래> 중 
 

<예나 지금이나 '시집살이'와 '고부갈등'은 훌륭한 문학 작품(?)의 소재였던듯 싶습니다>


결혼을 다른 말로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지요.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큰 일'이 바로 결혼이라는 겁니다.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예전에는 혼례를 남녀가 만나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조상의 대가 끊기지 않게 하는 의식으로 여겨 관혼상제 중에서도 특히 중요시 여겼다고 하네요. 제사나 대를 잇는 것에 대한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시되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서로 모르고 살았던 남녀가 만나 마음을 열고 부부의 연을 맺고, 그 두 사람의 인연을 바탕으로 양가의 여러 사람들 역시 친인척 관계를 맺게 된다는 데에서 결혼은 사람의 인생에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라 여겨지는 만큼, 결혼은 수많은 난관을 수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30년 가까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던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며 맞춰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집, 결혼 비용 등 결혼에 필요한 현실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집안 어른들의 이견을 조율하는 것도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평생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 책임감을 갖추어야만 하니까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갖춰지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우리는 주변에서 이로 인해 갈등을 겪는 사례를 여럿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불륜, 고부갈등, 삼각관계, 이혼... 결혼과 관련된 수많은 갈등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만큼 여러 갈래로 재해석되어 드라마, 소설, 영화 등의 소재가 되고 있지요.


<고추 당추보다도 맵다는 시집살이 ㅠㅠ>

결혼을 독립과 동일시하는 서양과 다르게, 유교적 가치관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시집을 가는 '친영례(親迎禮 : 남자가 여자 집으로 찾아가 예식을 올리고 신부를 데려오는 혼례 방식)'가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엔 부부끼리 독립해서 사는 경우가 많지만, 결혼을 한 여자들은 남편의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보편적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귀한 딸이 하루 아침에 시부모님을 모시며 집안일을 꾸려나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거예요. 친부모님의 배려와 관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집에서의 삶. 게다가 낯선 집에서 어렵기만한 두 어르신을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 그 과정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었고, 이는 '시집살이'의 가장 커다란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 시집살이는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명나라 혼인 풍속은 어떤데요? 우리와 많이 달라요?"
운휘가 숙안 옹주에게 물었다.
"명나라에서는 남자가 장가가는 게 아니라 여자가 시집가는 거라잖아. 남편이 처가에 찾아가 예를 취하고 부인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게 바로 친영례라는 거지. 우리처럼 혼인하고 처가에서 사는 게 아니라 시가에서 살아야 하는 거라고. 일반 백성들도 혼인하면 친정 식구들하고 사는 게 우리의 풍습인데, 혼인하자마자 생판 모르는 시가의 식구들과 계속해서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상상해 봐. 얼마나 끔찍하겠니?"
숙안 옹주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문제는, 명나라 혼인 풍속을 왕실에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거잖아요. 선왕께서도 친영례를 정착시키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전하께서 친영례를 정착시킬 방안을 내놓으셨다지요. 무조건 백성들에게 친영례로 혼인 풍속을 바꾸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왕실에서 먼저 모범을 보이면 좋겠다고요."

<옹주의 결혼식> 중에서 

흔히들 조선을 유교의 국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시대 초까지만 해도 조선은 유교 국가라고 부르기 어려웠습니다. 전 왕조였던 고려는 불교를 숭상하는 국가였고, 일반 백성들의 삶은 자유분방하고 남녀의 지위도 큰 차이가 없었지요. 조선 백성들이 유교의 예법을 받아들이게 된 건 건국 후 200년이 지나서부터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남자들이 장가를 가서 처가살이를 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례였었죠.

"... 지금껏 지켜온 풍속은 혼인하면 남편이 처가에 와서 사는 거잖아?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라고 바꿔야 하지? 왜 남편의 집에서 사는 게 좋은지, 난 잘 모르겠던데?"
운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그것은 예전의 풍속이 지나치게 처가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처가에 살다 보니 남편의 뜻을 좇아야 할 아내가 친정을 믿고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제사도 아들이 아닌 딸이 지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아이가 태어나도 친조부모보다 외조부모를 먼저 알게 되고 친가의 가문이 미미할 경우 우습게 여기는 일도 있었지요...."

<옹주의 결혼식> 중에서 

<옹주의 결혼식>은 조선 최초로 유교의 예법대로 '친영례'를 치룬 숙신 옹주의 결혼식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태종의 서녀, 즉 세종 대왕의 이복동생이었던 그녀는 백성들이 유교의 예법을 잘 따르지 않으니 왕실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친영례의 예법대로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요.

파원군(坡原君) 윤평(尹泙)이 숙신 옹주(淑愼翁主)를 친히 맞아 가니, 본국에서의 친영(親迎)이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7년 3월 4일 기사 

사실 숙신 옹주의 결혼식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저 한 줄의 기사가 전부입니다. <옹주의 결혼식>은 이 한 줄의 기사를 바탕으로 맨 처음으로 '시집살이'란 낯설고 두려운 상황을 맞이해야 했던 그녀, 운휘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요. 생모와 떨어져 궁 안에서 자라난 그녀는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 없이 외롭게 살아갑니다. 주변 옹주와 왕자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는 가운데, 그녀 역시 배필을 맞이해야 할 때가 되었지요. 그러나 호기심 많고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 탓에 그녀를 지켜보는 왕과 왕비는 간택령을 내려도 지원할 사람이 없을까 항상 고민입니다.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숙신 옹주는 '결혼 따위 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라는 생각을 하며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누구 하나 돌보아주지 않는 궁궐 생활에 지쳐가지만, 주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바라보며 결혼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하나 둘 생각해 보게 되지요.

 



"... 잔소리쟁이 할망구랑 함께 늙어 가면 서 버티고 살아 오늘에 이르렀습죠. 앞으로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반백 년 동안 온전한 내 편이 있다는 건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데 든든한 일 아니겠습니까?"
운휘는 할아범이 그어 놓은 선 밖에 서서 할아범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마와 뺨에 깊게 팬 주름이 더는 흉하게 보이지 않았다.

<옹주의 결혼식> 중에서 
 
그러나 왕이 그녀에게 명령한 것은 여태까지의 방식이 아닌 '친영례'를 통한 시집살이었습니다.
과연 그녀는 순순히 왕의 명을 따라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을까요?
굳이 그녀에게 친영례를 명령한 왕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머니도 없이 외로이 자라난 그녀는, 마음 풀어놓을 곳 하나 없는 시집살이를 무사히 해낼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이야기는 <옹주의 결혼식>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옹주의결혼식
카테고리 어린이 > 초등5~6학년
지은이 최나미 (푸른숲주니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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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숲 정원사


우리나라의 국기가 '태극기'라는 건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자세하게 파고 들어가서 국기의 각 부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태극기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에요.
우리에게는 친숙하고 익숙한 태극기이지만, 사실 외국인들에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나 부탄의 국기와 같이 그리기 어렵고 복잡한 국기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용을 그려넣어야 하는 부탄의 국기와 아랍어가 쓰여진 사우디아라비아 국기>
태극과 사괘의 문양이 외국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아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25시>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는 태극기를 보고 '태극기는 유일하다. 세계 어느 나라 국기와도 닮지 않았다. 태극기는 멋지다. 태극기에는 우주의 질서와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모든 것이 그려져 있다.'고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태극기의 각 부분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면 게오르규의 칭찬이 뜬금없는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어요.



일단 각각 양과 음을 상징하는 태극. 빨간 부분이 '양', 파란 부분이 '음'이지요.
이 두 부분은 태초에 세상에 나타난 두 가지의 힘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사실은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 속에 그 이야기가 다 담겨 있어. 처음에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두 힘이 생겨났는데, 그 두 힘을 '태극'이라고 해. 태극은 파란색 '음'과 붉은색 '양'으로 되어 있어. 여자와 남자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것처럼 태극의 음과 양이 만나서 '8괘'를 낳았단다...

... 그런데 '음'과 '양'은 무엇일까? 음과 양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이야. 여자와 남자, 땅과 하늘, 어둠과 빛, 짝수와 홀수, 달과 해처럼 말이야.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은 세상 모든 것이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어.
음과 양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이지만, 둘이 사이좋게 어울리면 행복한 세상이 된다고 여겼단다.

<안녕, 태극기!> 중에서



이 두 가지 힘이 만나 만들어낸 8개의 요소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태극을 둘러싸고 있는 8괘입니다.
이중 하늘을 상징하는 건, 땅을 상징하는 곤, 불을 상징하는 이와 물을 상징하는 감의 4괘가 태극기에 그려져 있지요.
원래 태극기에는 8괘가 모두 그려져 있었는데, 1882년 수신사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던 박영효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기로 태극기를 사용하려 할 때, 8괘의 문양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주변의 건의를 받아들여 4괘로 간소화한 것이 정착되어 사용된 것이라고 하네요.

1883년 1월, 태극기가 정식으로 공표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는 국기란 것이 없었어요. 당시 임금이었던 고종과 대신들은 나라를 대표할 국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지요. 그때, 청나라가 자신들이 쓰고 있던 용(龍) 모양의 국기를 본딴 것을 조선의 국기로 사용하여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임을 명확히 하라는 반 강제적인 지시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고종은 용기(龍旗)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을 명확히 했고, 그 대안으로 태극기를 창안하기에 이른 것이죠.

<당시 청나라가 사용하던 용 모양 국기>
국기에는 한 나라의 역사와 민족성, 소망이 담겨 있어. 그래서 국기는 나라의 얼굴이라고 해. 우리나라가 국기를 처음 사용한 건 서양의 다른 나라와 거래를 시작하면서부터야. 1882년 5월, 미국과 조선이 처음 통상 조약을 맺을 때 국기가 필요했어. 조선 대표 김홍집은 통역을 맡은 이응준에게 태극 무늬와 4괘로 국기를 만들게 했어. 그러자 청나라는 자기네 국기처럼 용을 그려 넣으라고 강요했어. 하지만 김홍집은 이를 무시하고 태극 무늬를 그대로 사용했단다...

<안녕, 태극기!> 중에서
이렇게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던 태극기였지만, 태극기가 만들어진 이후로 우리 민족은 크나큰 수난을 겪게 됩니다. 을사조약에 이어진 한일합방으로 시작된 일제 강점기 동안 태극기는 극심한 탄압의 대상이 되어 수도 없이 찢겨지고 불태워졌죠. 하지만 3.1운동과 같은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사건에는 어김없이 등장했던 것이 바로 이 태극기였습니다.



태극기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했어. 언제 어디서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이란다. 태극기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할 때,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 올랐을 때나 먼 우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릴 때에도 우리와 함께했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태극기는 우리와 더욱 가까워졌어. 태극 전사들은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운동장을 뛰었어. 우리는 얼굴에 태극 무늬를 그리고, 태극기로 옷을 만들어 입고 힘차게 응원했어.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경기장을 가득 채운 거대한 태극기와 힘찬 응원 소리는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단다.

<안녕, 태극기!> 중에서
이처럼 우주 창조의 비밀과 조화와 평화를 바라는 희망이 담긴 태극기.
<안녕, 태극기!> 속에는 태극과 8괘가 세상을 만든 이야기와 그를 상징한 태극기의 의미, 태극기의 역사, 우리 생활속 태극기 등 태극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어요. 삼색 띠, 십자가, 별, 태양, 달 등이 색깔과 위치만 다르게 배치된 다른 나라의 국기와는 달리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우리의 태극기. <안녕, 태극기!>를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태극기의 소중함과 자랑스러움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어떨까요?

안녕태극기
카테고리 어린이 > 역사/문화/인물
지은이 박윤규 (푸른숲주니어,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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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숲 정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