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중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지요. 사자성어 '망우보뢰(亡牛補牢)', '망양보뢰(亡羊補牢)'와 같은 뜻인 이 속담은 이미 일이 벌어진 후에 후회해도 소용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망우보뢰'에 얽힌 고사에서는 이 사자성어가 정반대의 뜻으로 쓰였다고 하네요.

중국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 서로 경쟁하던 전국시대, 초(楚)나라에는 장신(莊辛)이라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때 초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왕은 양왕(襄王)이었는데 호화로운 생활에 빠져 나랏일은 뒷전으로 하고 있었지요. 충신이었던 장신은 그런 양왕에게 수없이 많은 진언을 하지만 양왕은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충신의 말을 무시한 왕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양왕 역시 적국의 침공을 받아 도성을 버리고 망명길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지요. 그때 장신은 난리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다른 나라에 가 몸을 피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이 충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양왕은 그를 다시 불러들여 이제 어찌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있을 때 잘 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상황이었지만, 장신은 충신일 뿐만 아니라 대인배이기까지 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는 말로 양왕을 진정시키며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양 잃고 우리 고친다'는 뜻의 '망양보뢰'는 원래 '늦지 않았으니 앞으로 잘해'라는 뜻으로 쓰였던 거죠.

<작년, 장마로 피해를 본 함안보 공사장>

'한반도 대운하'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제안되었다가 국민의 지탄을 받고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꾼 강바닥 뒤엎기 공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사업적으로 여러 이해 관계가 얽힌 정책이었던지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업이었는데, 누가 뭐래든 꿋꿋하게 공사가 계속되고 있어요.

<이런 기사가 뜨기도 했습니다만...>

4대강 사업의 효용성에 대한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강을 효율적으로 정비함으로써 장마, 가뭄에 대비하고 환경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순기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강바닥을 뒤엎고 시멘트를 끼얹는 것이 어떻게 환경에 긍정적 영향이 될 수 있느냐는 반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요.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까지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줘야할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태풍 '메아리'가 지나가고 본격적인 장마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이미 파엎은 강이 쏟아지는 비를 감당하지 못해 홍수 피해가 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에요. 작년에도 몇몇 공사장에서 침수 피해가 나 공사가 중단되고 출입이 제한되는 일이 벌어졌었죠. 하지만 1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가 또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에요.

<집중호우로 인해 무너진 낙동강 상주보 공사 현장>


"여보세요, 사프데르인가? 이보게, 물이 끊겼다는군."
"그래? 이를 어쩌나?"
"왜 끊겼다고 생각하나? 주지사가 묻는다는데. 기술적인 원인을 말해줘야 하거든. 자네가 알고 있으면 알려주게."
"한 가지 짚이는 게 있긴 한데. 전기가 나갔거든. 전기가 나가면 물도 안 나오겠지? 물도 같이 안 나온다니 말이야."
"그럼 물과 전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나?"
"참 나, 전기가 뭘로 만들어지나? 물로 만들어지잖아! 물이 끊기면 당연히 전기도 끊기겠지."
"하긴. 그런데 우리 팀 서기관이 그러는데, 전에도 우리가 그렇게 말했다는데? 다른 이유를 찾아보게."
"그러면 도시가스 때문이라고 하게나. 도시가스공사 탓으로 돌려. 그네들이 알아서 하겠지 뭐."

<일단 웃고나서 혁명> , '모든 것은 주지사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중

터키의 작가 아지즈 네신이 지은 풍자 소설 중 한 꼭지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도시에 물이 끊기자 주지사가 물이 끊긴 원인을 수자원공사 측에 묻자, 수자원공사는 수도사업본부에 원인을 묻고, 수도사업본부는 부속 부서의 수석 기술자에게 원인을 묻고, 수석 기술자는 휘하 기술자에게 그 원인을 묻지만, 결국 아무도 단수의 원인을 알지 못해요. 원인을 파악해 다시 물이 나오게 하는 문제는 쏙 들어가고, 누구에게 단수의 책임이 있는지 서로 떠넘기기 시작합니다. 서로 책임을 '돌려막기'하던 그들 사이에서는 도시가스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결국 문제와는 전혀 상관 없는 지진 탓을 하기까지 이르게 되지요.

... "그것도 전에 써먹은 거네."
"그렇다면 라디오 때문이라고 하게나. 라디오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단수되었다고."
"속아 넘어가지 않을 걸세."
... "아, 지진이다, 지진!"
"잠깐만, 여기도 흔들리는데. 전등이 흔들려."
"아, 알았다, 찾아냈어! 당장 주지사에게 전하게. 지진이 일어났다고 말이야, 지진이. 지진이 일어나서 물이 끊겼다고 하게나. 그럼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할걸. 이건 정말 신께서 도우신 걸세. 지진이 일어났는데 우리가 뭘 어쩌겠어, 안 그런가?"
"맞네, 이 말은 철석같이 믿을 테지."

<일단 웃고나서 혁명>
'모든 것은 주지사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중

<이건 모두 미국 잘못입니다. 미국을 탓하세요.>

보고 있으면, '돌려막기'하는 건 카드 빚만이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한심한 변명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 슬프구요.

뭐, 앞으로 태풍이 최소 두 번 더 온다고 하고, 이번 장마철에 내릴 비의 양도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과연 4대강 준설이 '장마와 태풍을 넘기는' 역할을 해낼지, 아니면 '장마와 태풍에 넘어가는' 역할을 해낼지는 두고 봐야겠죠.

<... 다만 작년처럼 광화문 침수 사태만은 다시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오스카

Posted by 푸른숲 정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