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하다 현지 TV를 볼 기회가 있었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한창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를 말로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아나운서 옆에 낯익은 얼굴이 떠올랐다. 뽀글뽀글한 파마 머리에 육중한 몸, 느릿느릿 거만하게 움직이는 걸음걸이. 북한의 '장군님' 김정일이었다.
타국에 나와 미디어에서 본 최초의 '한국인'이 그가 될 줄이야. 무심하게 북한 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찝찝한 표정을 하고 식사를 마쳤지만, 이 곳에서는 우리나라 지방 뉴스처럼 일부 방송 시간을 할애해 매일 '북한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음 날에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같이 뉴스에 등장하는 그의 얼굴을 보아야만 했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곳 사람들이 묻는 '앞으로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될 것 같아?'라는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북한과 남한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서양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그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죽었다. 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18년간 북한을 지배해 온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김정일의 사망 소식이 공식 발표된 이후, 외국인 친구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처음 만났을 때 '북한 사람이야? 남한 사람이야?'라며 발랄하게 묻던 그들이 '북한의 지도자가 죽었잖아...'라며 조심스레 운을 떼며 불안함을 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폐쇄적인 독재자가 일으킨 세계대전으로 삶의 터전이 참혹하게 부서졌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유럽인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우리 못지않았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람 -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
김정일의 뒤를 이어 '대장님'의 칭호를 받은 그의 셋째 아들 김정은이 후계에 올랐다. 세계 최연소 국가 원수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권좌에 오른 그였지만, 북한의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제 - 식량난, 지지 기반 미약, 너무 어린 나이 등이 그의 불안요소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왕조 국가가 사라진 현대사에 있어서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은 유래없는 일이다. 싱가포르와 대만이 2대 세습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긴 했지만 북한 특유의 신격화와 무조건적인 세습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세습이 이루어진 나라와 그 지도자들>
흔히들 공산주의를 '20세기 인류가 감행한 최대의 실험이자 최악의 실패작'이라 부른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대비되는 민주주의를 지금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사회 구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아직 세계의 '대세'라 할 수 없다. '공화국'이라는 탈을 쓴 '왕조 국가'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공화국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라의 일을 꾸려가는 나라'라는 의미이지, 대중에 의한 공정한 투표로 지도자와 권력이 생성되는 민주주의의 의미와는 다르다). 멀리 쿠바와 싱가포르를 들 수 있고, 가까이 북한과 중국이 있다.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역시 이루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중국
중국은 이미 여러 번 죽었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부활했다.
<문명 이야기> 중
서양 위주의 시각이긴 하지만, 중국은 싱가포르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위기가 일어날 진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도 사회 발전을 이룩해 독재라는 것의 정당성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매번 투표철만 되면 '투표하세요'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어떤 사람이 입후보했는지 살펴야 하고, 시간을 쪼개 투표장에 나가 줄을 서서 투표를 해야 하고, 내가 뽑은 사람이 일을 잘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이 - 소위 '잘나고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척척 나랏일을 해결해 나가고 있으니. 독재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패' 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여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부패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이들의 성장은 과히 '민주주의의 위기'라 부를만 하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위기'의 중심이라 여겨지던 중국공산당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를 대비하고 있었다.
덩샤오핑조차도 공산주의 체제 백 주년, 그러니까 2049년에는 16억 5천만 명의 중국인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해져서 능히 민주주의 체제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그런 민주주의가 어떤 유형의 것인지 명시하지는 않았다... (중략) 그래서 원자바오 총리를 위시한 체제 내 자유파들은 이제 차근차근 정치개혁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개혁은 당 내에서 차츰 선거로 선출되는 직위를 늘리는 것,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나누고 중국에 지금까지 심각하게 결여되었던 "계몽시대"를 여는 표현의 자유, 법치국가의 발전 등을 세 축으로 삼고 있다.
<중국을 읽다> 중
중국이 준비하는 '민주주의'가 어떤 형태로 등장할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1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중에서도 권력이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보건 부장과 베이징 시장이 사스 사태에 책임을 물어 경질되었다. 서구 외교관은 그들을 '희생양'이라고 본다. "중국의 정치 체계에서 한 명의 장관이나 시장이 자기 행동에 전적인 책임을 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사람도 자기보다 윗선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들은 공산주의 체제 설립 후 처음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한 지도자는 경질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 지도부는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는 중국을 두려워한다. 이는 언론들이 중국에 대해서 너무 단편적인 보도만 하는 탓에 중국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화 질서 속에서 중국은 과거의 영화를 되찾았다. 그럼에도 중국은 21세기에 확고한 뿌리를 내린 듯 보이는 강대국인 동시에, 수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이며 사회적 불평등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 규모 세계 2위의 대국이면서 1인당 GDP는 90위에 그치는 개발도상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4번째로 많은 나라이자 하루 생활비 1달러 미만의 절대 빈곤층이 2억명이나 있는 나라.
중국은 개혁 30년을 거치고 나자 공산주의 체제 초기의 중국과 거의 딴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투철한 애국심, 농촌 지역의 불만,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대혼란에 대한 두려움 같은 주요 경향은 아직도 남아 있다. 중국의 오랜 야망들, 이를테면 다시 강대국으로 우뚝 서서 지난날의 모욕을 씻고 말겠다는 다짐도 여전하다.
<중국을 읽다> 중
김정일의 사망 이후, 북한 내외의 불안정한 상황에 대해 중국이 개입할 거라는 여론이 있었다. 중국이 북한을 흡수할 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견해를 내놓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침묵하고 있다.중국은 우리
나라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나라다. 근 2천년간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며 영향력을 발휘했고, 우리나라 역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012년은 청이 서구 열강의 침략에 몰락하여 멸망한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다.
이 100년 동안 중국은 이념 대립과 세계 시류의 변혁 속에서 혼란기를 보내야만 했지만, 부흥과 몰락, 혼란을 되풀이해온 이 나라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잠재력이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다시 발휘될 것이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지난 30년 간 어떤 과정을 통해 변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 최종적으로 그들이 만들어 낼 '그들만의 중국'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해 보는 것은 '대륙'이라 부르며 그들의 아이러니함을 비웃기 이전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 할 것이다.